5년 전 줄기세포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의 일이다. 체세포핵 이식을 통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방송한 MBC와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시점이었다. 나는 여러 방송사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의 줄기세포 연구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토론을 해야 했다. 그런데 손석희 교수가 진행하는 <100분 토론>은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손석희ㆍ 박원순은 문화 자산
첫째는 지나칠 정도로 불평 부당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진행자의 탁월한 능력이다. 줄기세포는 과학적인 부분과 대중적인 부분이 묘하게 뒤섞인 복잡한 문제였고 여론은 대개 언론 보도방향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줄기세포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고 논문조작 행위에도 강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MBC는 그 거대한 흐름에 반하는 진실을 보도했고 엄청난 역풍을 맞고 있었다. 손 교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회사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겠지만 그는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둘째는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 논객의 수준이다. 그들은 전문가 패널도 쩔쩔맬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중립을 지켜야 할 진행자의 역할을 충실히 보충해 주고 있었다. 그들이 주제에 관해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갖춘 사실도 그 때 알았다.
셋째는 출연자나 시청자와 지속적으로 교감하려는 열린 자세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토론 전후에 진행자와 패널이 자유롭게 환담하는 장면까지도 인터넷에 공개했고 시청자 게시판은 댓글로 불이 났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지만 출연자를 현관까지 배웅하는 진행자의 작은 배려도 다른 방송사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날카롭지만 따뜻한 진행으로 지속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과 진행자는 대한민국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대부로 여기는 박원순 변호사의 행로도 작은 노력으로 서로 돕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기획하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따뜻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여겨진다. 경제적 이익을 넘어 다양한 계층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필요한 사회문화적 기반과 가치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의 아이디어를 실천한 그의 문화적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더 이상 그 가치의 생산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손 교수는 출연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퇴출 위기에 몰렸고 박 변호사는 국정원의 사찰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했다. 손 교수의 경우 돈은 퇴출의 핑계고 박 변호사의 경우는 괘씸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이다. 돈이 아닌 가치는 어떤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돈은 모든 것의 이유고 수단이며 목적이다. 나름의 합리화 논리가 없지는 않겠으나 너무 천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천박한 퇴출ㆍ 소송 압박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법제처장을 포함한 보수논객들 마저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적절치 않다고 공언하고, 그 소송의 원고인 국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는 인터넷 청원운동이 벌어지겠는가. 손 교수의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수모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여당의원조차 그의 퇴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돈을 잃는 것은 일부를 잃는 것이지만 건강한 토론문화와 상부상조의 정신을 잃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이라는 주장은 배부르고 연약한 지식인의 푸념에 불과한 것일까.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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