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佛事)라면 대개 절의 집 넓히고 길 닦는 공사를 연상하기 쉽지만, 본래는 부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 일체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법당을 짓고 전각과 탑비를 세우는 것도 불사의 하나지만, 건축 불사는 불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그 안에 구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건축과 다르다.
법당이 불사의 공간적 수단만은 아니라는 의미인데, 그 관점을 확장하자면 서까래로 얹을 소나무를 다듬는 일도, 나무를 키우고 가꾸는 일도 불사가 된다. 그러니 비도 햇살도 그 불사에 울력하는 셈인데, 세상 만물에 불성이 있다는 불교의 세계관이 그런 맥락과 통한다. 그 장엄하고 먼 중창불사가 전북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구산선문의 최초 가람으로 1,200여 년 전 개창된 실상사가 복원ㆍ중창불사를 위해 1차 절터 발굴을 끝낸 게 1990년대 말이라고 한다. 실상사 관계자는 "스님이 30여 분 계시는데 법당이 비좁아 다 들어가지도 못 할 정도"라고 했다. 비좁고 낡고 불편해도 선뜻 공사를 벌이지 못한 것은 가난한 절 살림 탓도 있겠지만, 더디더라도 불사의 본래 의미를 좇아 하자는 뜻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불사의 의미가 절집 늘리는 일로 그 의미가 변질되고 왜소해졌잖아요. 사세(寺勢)를 과시하는 방편 혹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상사 식구들은 무릇 절집이란 중생과 승려가 자연과 더불어 어우러지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세웠다고 한다.
뜻만 세우고 진척 없이 차일피일하던 실상사 불사의 물꼬가 열린 것은 2007년 12월 홍익대 미대 안상수 교수가 불사의 총대를 메면서부터. 사람을 모으고 세미나를 조직해 실상사 불사의 원칙과 절차를 논의한 게 그간 4차례라고 한다. 실상사 주지 재연 스님을 중심으로 불교학자, 건축가, 생태전문가와 산내면 주민, 신도들이 참여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인 도법 스님,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건축가인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와 조성용씨 등이 그들이다.
지난 10일 선포식에서 공개된 '실상사 선언_불사십조(佛事十條)'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생태, 환경, 문화, 생명의 가치담론들이 실상사의 너른 터 위에 무형의 불사를 먼저 이룬 것이다.
그 첫 조가 '연기적 세계관의 불사'다. 월주 큰스님은 법어에서 "(가람 불사는) 연기적 세계관을 구현하고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스님들의 수행과 신도들의 신행 및 교육, 포교활동 공간으로 쓰이면서 지역 공동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기란 모든 사물이 유ㆍ무형의 관계 속에 그물코처럼 이어져 존재한다는 불교의 중심 사상이다.
실상사 불사 기획팀은 사찰 땅인 오른편 산의 나무를 불사의 재료로 쓰기로 했다.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대로, 산이 기른 나무를 산의 품에 안길 절의 재료로 쓰겠다는 다짐이다. 들보 감이 마땅하지 않으면 충실해질 때까지 숲을 살피고 가꾸겠다는 뜻을 담은 '용재림 조성 고유문(告由文)'을 낭독하기도 했다. 실상사 관계자는 "우리 불사는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자랑처럼 말했다.
부속 암자와 절 담장 밖 등 미발굴지의 발굴조사와 병행해 산내면 일대 13개 마을에 대한 생태조사도 병행할 계획이다. 기획팀은 "우리 불사의 완결된 마스터플랜은 없다"며 "여건에 맞추고 새로운 의견을 수용하면서 수시로 수정한다는 게 기본인데 대략적인 설계는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급한 건물과 시설, 이를테면 비좁은 공양간과 재가불자 숙소, 템플스테이 시설 등은 조립식 임시건물 형태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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