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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가을 생선요리 3색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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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가을 생선요리 3색 대전

입력
2009.10.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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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어스름밤, 위풍당당하게 치솟은 수많은 고층 건물에서 넥타이 부대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엔 뭔가 허전한 이들은 삼삼오오 모인다.

낮 동안 마음 속에 켜켜이 눌러 담아둔 이야깃거리가 막 차오르려는 참이다. 대화하며 분위기 좋게 뭔가 먹고 싶은데 어디로 갈꼬. 그러나 고민하지 마시길. 이맘땐 좋은 생선이 풍성하니 생선요리집이면 만사 OK.

그런데 생선요리도 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 않나. 얼른 봐도 동양식 서양식 퓨전식 세 유형이 있다. 그러나 제각각 매력이 있으니 이제 또 고민. 그래서 다 가 봤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

동양식= 전어구이와 도루묵탕

'따뜻한 분위기, 구이 요리를 할 때 나는 특유의 희뿌연 연기, 고소하면서도 약간은 비릿한 냄새.' 서울 여의도백화점 뒤편에서 27년째 장사를 해 온 작은 생선구이집 다미에 들어섰을 때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첫인상이다.

전에 가 봤던 일본 도쿄(東京) 시내의 선술집 분위기도 조금은 묻어나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런 느낌에 매료돼 '다미 중독자'가 된다.

생선구이 하면 뭐니뭐니해도 가을이고, 가을 하면 바로 전어가 떠오른다. 이 식당도 예외 없이 '가을 전어'라고 종이에 적어 벽에 큼지막하게 붙여 놓았다.

"깊은 바다에서 잘 자란 전어는 이맘때 몸 길이가 20cm에 달하는 것도 있어요. 육류는 어리고 덩치가 작은 게 육질이 연하고 맛있죠. 생선은 반대에요. 큰 게 부드럽고 맛도 좋아요."

생선구이 18년째인 유영균 주방장의 설명이다. 한데 아직 올 가을 전어 맛을 못 봤다면 서둘러야 한다. 아쉽게도 벌써 끝물이란다.

유 주방장은 의외로 요즘은 전어보다 고등어랑 꽁치가 더 맛있다고 추천한다. 아무 시장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흔한 생선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특히 기름이 차오른 가을 꽁치의 맛은 다른 철과 차원이 다르다. 오죽하면 '가을 꽁치 기름 먹으면 겨울 나기 쉽다'는 말도 있을까.

다미에 오는 손님들은 매일 새벽 수산 시장에서 가져온 신선한 생선을 직접 보면서 주문할 수 있다. 윤 주방장은 손님이 고른 생선을 그 자리에서 바로 손질한 뒤 소금을 솔솔 뿌려 구워 낸다.

눈도, 입도 모두 만족이다. 구울 때 나는 연기와 냄새가 옷에 배긴 하지만 꼬박 한 해를 기다려 드디어 가을 생선 맛을 보는데 그쯤이 무에 그리 대수일까 싶다.

가을 전어나 꽁치처럼 기름이 찬 생선은 맛은 더할 나위 없지만 굽기는 무척 까다롭다. 기름이 뚝뚝 떨어져 연기가 많이 나고 그만큼 잘 탄다.

생선에 까맣게 그을음이 앉지 않을 만큼 기름이 나오는 양과 뒤집는 속도를 절묘하게 맞춰야 한다. 이게 바로 18년 연륜에서 나오는 윤 주방장표 생선구이 맛의 비결이다.

메뉴엔 없지만 윤 주방장이 특별히 요리해 준 가을 별미, 도루묵탕을 빼놓을 수 없다. 10, 11월에 잡힌 도루묵은 한 마디로 '알 덩어리'다. 굽거나 매운탕을 해 놓으면 씹을 때 알이 톡톡 튀는 느낌이 입맛을 더욱 돋운다. (02)783_5167

서양식= 삼치스튜와 메로구이

3면이 바다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생선요리를 한국 못지않게 즐기는 나라가 있다. 이탈리아다. 특히 중부의 토스카나주와 북부의 리구리아주, 북서부의 피에몬테주 사람들이 다양한 생선요리를 많이 먹는단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의 이탈리아식당 토스카나는 '10월의 추천 요리'로 삼치스튜를 선보이고 있다. 이맘때 통통하게 기름이 차는 한국 삼치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탈바꿈시키는 이탈리아식 요리법이다.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게 마련이죠.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매한가지에요. 주로 주말에 가정집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간편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생선요리가 바로 스튜에요. 삼치뿐 아니라 도미나 농어로도 많이들 해 먹죠."

2007년부터 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토스카나주 출신 세르지오 자네티 주방장. 외모는 영락없는 이탈리아 남자지만 가족과 함께 생선요리를 맛보는 장면을 상상하며 얘기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이국적인 느낌이 살짝 가시는 듯하다.

생선스튜라. 우리에겐 아직 좀 생소하다. 삼치 하면 그저 숭덩숭덩 잘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 방법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요리법이 없다.

삼치스튜를 만들려면 우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얇게 저민 마늘을 볶는다. 미리 삶아둔 작은 알감자를 반 잘라 넣고 토마토를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넣어 같이 볶은 다음, 자작할 정도로 육수를 붓고는 생선을 올려 익힌다.

언뜻 보면 한국식 찜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찜보다 낮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 조리해야 한다. 자네티 주방장은 "15분 이내에 약한 불에서 수증기로 은근히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흰 살 생선 특유의 질감이 그대로 산다는 것.

삼치스튜 조리법을 알려주?자네티 주방장의 마음은 어느덧 고향에 가 있다. 모국에서 생선스튜와 함께 즐겨 마셨다며 2가지 와인을 소개했다. 시실리산 '도나푸가타 라 푸가'와 콤파냐산 '그레코 디 투포'.

이탈리아에서도 생선구이는 친근하고 손쉬운 메뉴다. 리구리아주와 토스카나주에서 많이 먹는다는 메로를 자네티 주방장이 이탈리아식으로 구워서 내 왔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서 생선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색깔을 낸 다음 오븐에 10분 정도 넣어 완성했다. 한국식으로 구워 낸 생선은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연기까지 솔솔 피어나오는데 비해 이탈리아식 생선구이는 올리브유의 향만 살짝 느껴질 뿐 소리도, 연기도 없다. 생선구이만 놓고 보면 한국인의 식탁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열정적'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02)2222_8647

퓨전식= 가자미튀김과 방어카르파치오

요즘 젊은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퓨전이 대세다. 한식 일식 양식을 고집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이들 음식 스타일의 장점만 취합해 살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더해 새로운 퓨전식 요리를 개발하는 요리사가 늘고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레스토랑 '컴파스 로즈'의 김창열 주방장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그가 눈독 들인 가을 생선은 가자미. 가자미는 전어나 꽁치처럼 기름은 많지 않다. 대신 담백한 맛이 경쟁력이다. 저지방 고단백에 칼슘까지 풍부해 '바다의 정력제'라고도 불린다.

"가자미 살을 떠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요. 전분을 푼 물에 담가 튀김옷을 입힌 다음, 기름에 살짝 튀겨 내면 됩니다. 가정에서는 그냥 밀가루 묻히고 계란옷 입혀서 부치거나 빵가루 묻혀서 튀겨도 좋죠."

여기까지는 뭐 퓨전이라고까지 할 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김 주방장은 튀겨 낸 가자미에 중국음식점에서 많이 쓰는 칠리 소스를 얹어 내 왔다.

가자미 살의 담백함과 튀김 요리 특유의 고소함에 칠리 소스의 톡 쏘는 알싸함이 더해지니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독특한 생선요리가 됐다. 김 주방장은 "좀 더 색다른 가자미튀김을 즐기고 싶으면 시중에서 파는 굴소스 바비큐소스 겨자소스를 찍어 먹어도 좋다"고 추천했다.

익히지 않은 생선요리를 먹고는 싶은데 회는 좀 식상하거나 부담스럽다 싶을 때는 카르파치오가 정답이다. 익히지 않은 생선이나 고기를 종이처럼 얇게 저며 내는 이탈리아식 요리다.

김 주방장은 가을과 겨울 일본에서 회나 초밥에 많이 쓰는 방어로 새로운 카르파치오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식과 일식을 한 접시에 담은 셈이다. 얇은 방어 살 위에 뿌려 놓은 캐비아가 마치 작은 보석이 박혀 있는 것 같다.

가을에 방어는 겨울을 날 준비를 하려고 먹이를 특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살이 오르고 지방도 풍부하다. 김 주방장은 "방어는 익히면 살이 뻑뻑해진다"며 "카르파치오로 먹으면 뒤끝이 고소해져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어카르파치오와 잘 어울리는 음료로 샴페인을 추천했다. (02)317_0365

글= 임소형기자

사진= 신상순기자

■ "북한에선 숭어국이 별미"

"전어요? 글쎄요, 북한엔 가을에도 전어는 별로 없어요. 대신 우린 숭어국을 먹고 자랐죠. 대동강 숭어 하면 북한에선 크고 맛있기로 유명하거든요. 삼촌이 대동강에서 낚시를 해 숭어를 잡아 오면 내장 빼고 매운탕 비슷하게 양념해서 국을 끓이곤 했죠."

탈북 여성으로 처음 2월 국내에서 박사학위(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를 받은 이애란(45)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이 기억하는 '고향의 가을 생선'은 숭어다.

1997년 북한을 떠나 지금까지 국내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는 동안 여러 차례 숭어를 먹어 봤지만 그때 그 맛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단다.

"죽처럼 부드러운 진흙 있죠? 북한에선 '감탕'이라고 불러요. 그런 데서 사는 숭어를 바로 잡으면 진흙 특유의 감탕 내가 나요. 양식한 숭어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냄새죠."

양념으로 감탕 내를 제거해야 비로소 숭어국이 제 맛을 낸다고 한다. 이게 바로 북한 어머니들의 요리 비법.

북한 사람들도 가을이 깊어지면 도루묵을 찾는다. 우리처럼 집집마다 가스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대부분 숯불이나 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먹는다. 아마도 그렇게 구워 먹는 도루묵이 더 감칠맛 나지 않을까 싶다.

도루묵 하면 북한에선 구이보다 식해가 더 인기다. 소금에 절인 도루묵을 엿기름과 마늘 고춧가루로 맛깔 나게 양념한 다음, 무와 좁쌀밥을 넣어 뼈까지 푹 삭히면 그 유명한 도루묵식해가 된다. 쫄깃쫄깃한 육질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단다.

"참, 지금쯤이면 함경도에선 집집마다 명태순대를 준비하고 있겠네요. 명태를 구해서 일단 살과 내장을 다 빼내야 해요. 살만 골라내 두부 배추와 잘 버무린 다음, 다시 명태 뱃속에 눌러 넣는 거죠.

이때 명태의 원래 모양을 얼마나 잘 살려 내느냐가 관건이에요. 속을 다 넣으면 통째로 쪄내죠. 먹기 좋게 잘라 간장에 찍어 먹는 건데, 맛 못 보셨죠? 올 연말에 초대할게요."

이 원장은 12월 서울 종로3가에 새 터를 잡고 연구원을 재개원할 예정이다. 실습실과 강의실을 갖추고 교육생을 모집해 북한 음식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다짐이다. 개원 기념 행사 때 북한을 대표하는 요리로 명태순대를 선보일까 생각 중이란다.

"북한에선 날이 추워서 음식을 맵지 않고 심심하게 해 먹는다고요? 천만의 말씀이죠. 북한 음식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에요. 함경도 음식은 전라도와 비슷할 정도로 맛이 진하죠. 북한 요리를 널리 알리면 한국 음식 문화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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