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청소 차량이 한 번 더 달리면서 도로를 닦는 것으로 모든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개통 전 마지막 청소인 만큼 그 전에 주변에 쓰레기 같은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봐주세요."
삼성건설 인천대교 토목사업본부 정명현(32) 대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 몸놀림이 빨라진다. 어떤 이는 대형 진공청소기로 도로에 있는 작은 모래알 하나까지 빨아들이는가 하면, 다른 이는 물청소 차량에 붙어 있는 청소용 솔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본다. 개통식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인천대교 공사현장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인천 송도국제신도시 서북단,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송도신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는 세계에서 7번째로 길이(21.38㎞)가 긴 다리다. 마치 살아있는 용 한 마리가 꿈틀대며 바다 길을 헤쳐나가듯 휘어진 모양과 거대한 알파벳 'Y'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주탑은 단숨에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태세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약 5년간을 한결같이 현장에서 보낸 이들의 소회는 어떨까. 정 대리는 "키워온 자식 출가시키는데 마지막까지 예쁜 모습으로 보내줘야 되지 않겠냐"며 "나중에 딸 시집 보낼 때도 이런 기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웃었다.
그는 2003년 8월 사회에 첫 발을 내딘 입사 6년차다. 삼성건설 입사 후 1년간 사내 기술교육을 받고 2004년 8월 인천대교 현장에 투입된 그는 줄곧 그 현장을 지킨 산증인이다.
하지만 그도 현장에 처음 투입됐을 때는 망망대해에 수십 km의 다리를 건설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인천대교 공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바다뿐이었으니까요. 초반에는 작업도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이뤄졌습니다.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보니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바닷속 지면을 뚫고 말뚝부터 박아야 했거든요. 난생 처음 며칠간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작업을 했죠."
인천대교 공사구간 가운데 삼성건설이 시공을 맡은 부분은 총 12.3km의 다리 중앙 부분이다. 여기에는 대형 선박들이 다리 아래로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각을 세우는 대신 다리 위에 주탑을 세우고 주탑과 상판을 케이블로 연결해 다리를 지탱하도록 한 사장교 구간(1,480m)이 포함돼 있다. 63빌딩 높이(249m)와 맞먹는 주탑(238.5m) 시공은 워낙 고도의 기술을 요해 이 한 공정에만 2년이 걸렸다.
정씨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총각이라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말뚝을 박는 공사에 말뚝 근무를 서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 후 계절이 스무 번 가까이 바뀐 동안 가정도 꾸리고 현재 14개월 된 딸 하은이도 생기는 등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주탑과 다리는 112~420m 길이의 케이블 208개로 연결돼 있다. 케이블 하나에 지름 7㎜짜리 선들이 수백 개씩 꼬여있는데, 이 선들을 하나로 연결하면 서울, 부산을 15회 왕복하는 길이란다.
케이블 가설 전문업체 ㈜아이언앤디의 인천대교 현장사무소 김성종(39) 과장은 이 케이블과 주탑을 연결하는 작업을 총괄했다. 케이블이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연결되면 다리 상판 자체가 내려 앉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작업이었다.
2007년 11월 인천대교 현장에 나온 그는 2년 만에 피부색이 까맣게 변했다. 바다 위 70m 높이의 다리에서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과 싸우며 작업한 결과다.
케이블 연결 작업을 하는 동안 김 과장은 다리 한 가운데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잤다. 간이 화장실에 내용물이 다 차면 바지선이 와서 다른 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먹는 것이었다. 현장의 화재 위험성 때문에 컨테이너 숙소에서 취사 자체가 금지되다 보니 매일 밥차가 아닌 '밥배'가 와서 작업자들의 양식을 책임졌는데 기상악화로 배가 현장으로 오지 못하는 날은 꼼짝없이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주탑 하나에 40명이 두 팀으로 나눠 24시간 맞교대로 작업 했는데, 풍랑이나 짙은 안개 등 기상악화로 배가 못 뜨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밥도 굶으면서 2박3일씩 다리 위에 갇혀 있을 때도 많았어요."
인천대교 개통과 함께 이들은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가 한동안 꿀맛 같은 휴식을 갖는다.
정씨는 19일 인천대교의 정식 차량 통행을 앞두고 주말인 17일 현장직원 가족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견학 행사에 부모님과 장인ㆍ장모, 아내를 초청했다. 그는 "결혼 직후 남편을 인천대교에 뺏겨 제대로 신혼재미도 느끼지 못했을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고, 그런데도 불편 한 마디 하지 않은 아내에게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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