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일반고교생들, 기죽지 마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일반고교생들, 기죽지 마라

입력
2009.10.15 23:58
0 0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흔히 받는 질문은 "전주고 나왔냐"는 것이다. 전주고는 최근 국가 인재DB에 오른 고교별 인사 통계에서도 드러났듯이 전체 5위에 꼽힐 정도로 명문 중의 명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머쓱해 하며 이름도 생소한 '전주 영생고'라고 대답한다. 15 년 전 신도 암매장 사건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생교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을 붙이며 당당하게 말한다.

비평준화 시절 전고(전주에서는 전주고를 전고라 부른다)는 요즘 특목고보다도 들어가기 힘들었다. 특히 서울 등이 평준화한 70년대 후반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들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자나깨나 듣는 말은 "전고 가야지"였다. 다행히 내가 중2때부터 고교평준화가 됐다. 이전에는 수재들만 들어갔는데 운만 좋으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운은 따르지 않았다. 평준화 전까지 영생고는 성적이 최하위권이었고 이미지도 최악이었던 학교였다. 선배들께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학교는 등록금만 내면 누구라도 갈 수 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이런 학교에서 공부해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당시 선생님들은 전고 선생님들에 비해 학벌이나 실력이 한참 뒤처졌고 학교시설이나 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선입견이었다.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은 똘똘 뭉쳐 "비슷한 성적의 학생을 데려다 결과가 나쁘면 우리 책임"이라고 말씀하시며 열과 성을 다하셨다. 몇 년 전 졸업 20년을 기념해 선생님들을 모시고 마련한 동창회에서 한 선생님은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우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는 얘기도 털어놓으셨다. 그 결과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이라고 하는 곳에 모두 80여명이 합격했다. 전주에서는 최상위권 성적이었다. 이에 비해 평준화 이후 전고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러한 개인적 체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고가 비평준화 시절 한 해 수 백 명씩 '스카이'대학에 갔던 것은 '입학생 효과'로 봐야 한다. 수재들이 입학한 학교에서 3년 후 일류 대학에 많이 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또 동일한 조건에서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실력 있는 교사가 몰려있고, 환경이 나은 고교라도 학생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 공개된 자료도 살펴보면 성적이 뛰어난 일반고의 경우에도 평준화지역이든 비평준화지역이든 상대적으로 입학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몰려있는 학교였다.

문제는 학교 서열이 정해졌으니 각 대학이 앞으로 내신성적을 동일한 비중으로 반영할지 여부이다. 정부가 이 부분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대로 된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대학들이 고교간 우열에 따라 내신의 가중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부진한 학교에 대한 지원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충분한 검토와 대책도 없이 관련자료를 내준 정부의 무신경과 배짱이 놀랍다. 하지만 상위 30곳 중 27곳이 특목-자사고라고 해서 순위에 없는 일반고교 후배들이여 행여 기죽지 마라. 차라리 지금까지 일반고에서 상위권에 속한다고 느긋해했다면 이번 기회에 마음을 다잡고 더욱 매진하면 된다.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대 등에서는 아직도 유리하다. 고교시절 봤던 영어학습서에는 이런 독일 속담이 있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가장 크게 웃는다.'

최진환 정책사회부장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