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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野神'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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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野神' 김성근

입력
2009.10.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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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니, 바둑으로 치면 9단이라는 얘기다.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신을 찬양하기는커녕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야구 스타일 때문이다.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타를 칠 값이라도 호쾌하고 치고 달리는 야구가 아니라 툭하면 투수를 바꾸고, 5점을 이기고 있어도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없다고 판단해 한 점을 더 뽑기 위해 중심타자에게까지 보내기 번트를 시킬 때면 상대 팀조차 짜증을 낸다. 이를 일컬어'작은(small) 야구'라고 한다. 다분히 일본 야구에 빗댄 비아냥거림이다.

▦김성근 감독은 철저히 이기는 야구를 한다. 우선 이겨야 한다. 헤밍웨이는 "전쟁에서 패배보다 더 비참한 사태를 가져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텃세 강한 한국에서 야구 코치와 감독을 하면서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었다. 장수가 그렇듯, 그에게"감독이라는 직업은 일하는 것 자체가 이겨야만 하는 삶"(정철우의 책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 에서) 이다. 이기기 위해 그가 믿는 것은 두 가지다. 숫자(통계)와 땀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직은 김 감독의 승리의 마지막 '조건'이기도 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도 허점은 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끝없이 상대를 관찰해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또 분석해야 한다. 자기 팀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왼손 타자에게 피안타율이 얼마이고, 누구는 지금까지 왼손투수가 나왔을 때 타율이 얼마인지. 심지어 야간경기에서의 투타성적까지 분석한다. 져도 좋다. 졌으면 왜 졌는지 분석해야 다음에 이길 수 있다. 분석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데이터를 표현할 수 있는 몸이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노력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흔적론은 김 감독의 지론이다. SK와이번스가 에이스 투수, 포수인 김광현과 박경완의 부상에도 올 시즌 막판 17연승을 할 수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벼랑 끝에 몰렸지만 감독 선수 누구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상대팀의 역전패 징크스가 아닌, 다른 팀의 두 배나 흘린 땀을 믿었기 때문이다. 모든 바둑기사가 이세돌일 수는 없듯, 야구 감독도 마찬가지다. 쿠바까지 꺾으며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딴 김경문 감독의 통 큰'뚝심 야구'도 김성근 감독의'작은 야구'에게는 세 번 연속 역전패를 당했다. 그게 야구이고, 인생이다. 스타일에 우열이란 없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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