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겸허한 마음과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릴 때부터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해 왔으니 겸허와 섬김, 봉사는 이 대통령의 진정이 담긴 화두임에 틀림없다.
섬기는 리더십 늘 강조하지만
며칠 전에도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우리가 작년에 (촛불시위 등으로) 바닥까지 갔었는데 어떻게 오만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도가 50%를 넘자 긴장이 풀어지거나 우쭐하는 현상이 고개를 든다고 보고,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철저히 섬김과 봉사의 정신으로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런 '자경론(自警論)'의 배경은 이미 보도된 대로 청와대 내부의 불미스러운 갈등과, 민간 기업에 대한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기금 출연 요구 등이다. 하나는 청와대 내의 위계질서와 기강에 관한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에 대한 청와대권력의 행사로 빚어진 물의다. 봄에도 이 대통령은 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 의혹에 휩싸인 행정관들을 경고하며 기강 확립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겸허를 실천하고 있다. 가령 최근 중국에 다녀올 때 기업인들에게 비행기의 1등석을 배려해 대통령과 함께 앉도록 하고 장관들의 자리는 비즈니스석으로 한 단계 낮춘 것은 처음 듣는 미담이다. 또 지난해 말부터 해외 출장 길에 자녀들이 선물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인상적이다. 20년 전,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가방을 들고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한때의 과시적 행동일 뿐이었다.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잦은 당부와 경계를 하고 스스로 겸허한 자세를 갖추려고 애를 쓰는데도 왜 비슷한 말썽이 자꾸 생기는 것일까. 특히 이명박 정부가 겸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고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라거나 5공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반대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대통령 자신의 언동과 정책 사이에 괴리가 있거나 공직자들과 대통령 사이에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여전히 티를 내거나 허세를 부리고 대접 받기를 바란다. 정부 부처가 주재하는 회의나 행사의 경우, 장관(차관)은 그 집의 주인인데도 먼저 현장에 도착해 민간 참석자들을 맞는 법이 거의 없다. "장관(차관)님 입장하십니다"하는 '물럿거라'구령 속에 나타나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늘 '국사에 바빠서' 그런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민간인들보다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시던 전 장관에게 빈 말이나마 자리 양보 한 번 하지 않고 상석에 턱 앉는 사람도 여러 번 보았다.
최근 어떤 공무원으로부터 글을 써 달라는 전화청탁을 받았다. 구체적 내용은 이메일로 알려 준다기에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그가 정한 마감날,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이메일을 받은 바 없다고 했더니 확인 결과 자신의 지시를 받은 부하직원이 엉뚱한 주소로 메일을 보냈더라고 이메일로 알려왔다. 이에 대한 나의 답신을 그가 읽은 것은 정확히 1주일이 지난 뒤였다. 통화는 자신이 하고 부하를 시켜 메일을 보낸 것, 행정행위에 대한 후속 확인에 1주일이나 걸린 것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정운찬 총리의 경우는 어떤지 아직 모르겠지만, 한승수 전 총리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의 총리보다 더 권위적이라거나 경호가 고압적이라고 흉 보는 말을 몇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무엇이 겸허한 행동이고 섬기는 자세이며 봉사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야 한다. 관존(官尊)을 민존(民尊)으로 바꾸는 구체적 모범을 위에서부터 보여야만 섬기는 리더십이 정착될 수 있다.
서민행정의 반 서민성 점검을
그리고 서민을 위한다는 행정이나 정책이 진정인지,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반서민적 요소가 없는지, 섬기는 자세가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한다. 몸에 밴 진정한 겸손과 섬김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야만 정부에 대한 신뢰나 지지가 우러날 수 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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