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청바지 가격이 바닥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 캐주얼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990엔(약 1만3,000원)짜리 청바지를 내놓은 뒤 지난해엔 아무리 싸도 2,000엔 가까이 하던 청바지가 급기야 690엔(약 9,000원)까지 떨어졌다. 가격 인하는 당장 반갑지만 기업 수익 악화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경기 침체의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에서 갈수록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일본의 체인형 할인판매점 돈키호테는 14일 일반 슈퍼마켓보다 20~30% 싼 저가격의 자사브랜드(PB) 상품 148종을 발표하면서 대표상품으로 690엔짜리 청바지를 선보였다.
일본 유통업계에 청바지 가격 인하 경쟁이 붙은 것은 3월 유니클로가 자사의 저가 브랜드 '지유(G.U.)' 점포에서 990엔 청바지를 판매하면서부터다. 불황으로 닫아 잠근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중국에서 하던 봉제를 인건비가 더 싼 캄보디아로 옮긴 게 가격인하의 비결이었다.
이에 질세라 일본 최대 슈퍼마켓업체인 이온과 체인 슈퍼마켓 다이에가 각각 880엔짜리 청바지를 내놨고 1일부터는 세계 최대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 자회사 세이유(西友)가 이보다 30엔 더 싼 850엔 청바지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 인하 경쟁은 청바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락, 음료수 등의 경우도 기존 절반 가격 상품이 속속 등장하는 등 생사를 건 '가격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소니, 닌텐도까지 게임기 값을 내리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문제는 이 같은 가격 인하로 일본 경제가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회복도 하기 전에 디플레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8월 근원소비자물가지수(식품, 에너지가격 제외)는 지난해 동기 대비 2.4% 떨어져 통계 작성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올해 0.6%, 내년 1.3% 떨어질 것으로 보고 상당 기간 제로에 근접한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일본은행도 0.1%인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며 '출구전략'에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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