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전통 경제학에서는 경제활동의 주체인 인간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과학계에선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종종 감정에 이끌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거나 남을 돕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경제 현상을 해석하거나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칭찬엔 인색, 비판엔 적극인 이유
'당신은 3명으로 구성된 조의 일원이다. 20개의 토큰을 받아 일부는 공공 계정에, 나머지는 개인 계정에 보유하라. 개인 계정에 넣으면 당신이 토큰 1개당 1점, 공공 계정에 넣으면 당신과 다른 조원들이 각각 0.5점을 얻는다.'
조원들이 토큰을 공공 계정에 많이 넣을수록 조 전체의 이익은 커진다. 반대로 조원들이 개인 계정에 많이 넣으면 각자의 이익은 커지지만 전체로선 손해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엔 토큰의 40~60%를 공공 계정에 넣다가 실험이 반복될수록 기여율을 점점 줄인다.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전통 경제학의 전제가 언뜻 맞아떨어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포상이나 처벌이 가능해지면 상황은 변한다.
'매회 실험이 끝나면 조원들 각자의 수익을 공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 조원은 다른 조원의 수익을 삭감시키거나(처벌) 올려줄(포상) 수 있다. 자신의 토큰 1개를 처벌에 이용하면 상대방 수익은 3점 감소하고, 포상에 이용하면 상대방이 3점을 얻는다.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팀과 안도경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팀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상황에서 실험을 반복해 봤다. 그 결과, 공공 계정에 많이 기여한 조원일수록 다른 조원들로부터 포상을 많이 받았고, 적게 기여할수록 점수가 많이 깎였다.
여기엔 다음에 자신이 더 많은 수익을 얻으려는 심리가 깔려 있을 수 있다. 포상을 주면 상대방이 다음 실험 때 공공 계정 기여율을 올릴 것이고, 그만큼 자신이 받을 혜택도 늘기 때문이다.
처벌하면 상대방이 반성하고 다음부터 기여율을 높일 거라는 기대도 할 것이다. 여전히 인간은 이기적 사고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엔 매회 실험마다 조의 구성원을 바꿔 봤다. 다음 실험에서 상대방에게 받을 혜택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포상은 좀 줄었지만 희한하게도 처벌은 오히려 늘었다.
최 교수는 "남이 잘 한 일을 칭찬할 때는 고마워서라기보다 '언젠가는 나한테 도움이 되겠지'라고 기대하는 이성적 심리가 먼저 작용하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선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처벌하는 감정적 심리가 더 많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칭찬에는 인색하지만 비판에는 적극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이타성은 시장경제의 충분조건
정통 경제학에서는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더 이기적으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뒤집는 연구도 눈에 띈다.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1만원을 주고 그 중 일부를 상대방에게 주라고 한다. 단 돈을 건넸을 때 상대방이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배분 몫은 돈을 받은 사람만이 결정한다.'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돈을 받는 사람은 금액이 얼마든지 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해서 무일푼이 되는 것보다 적게라도 받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또 주는 사람은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수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받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금액이 전체의 30% 이하면 거부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인류학자 조세프 헨리치 교수는 심리학자 정치학자들과 함께 수렵 채취 방식으로 살아가는 16개 부족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해 봤다. 그 결과, 시장경제를 많이 경험한 부족일수록 적은 금액에 대해 가혹하게 거부했다.
인간이 만든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다면 금융 사기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없고,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계약한 다음 공금을 빼돌리는 행위도 있을 수 없다.
최 교수는 "이타성은 시장경제와 무관하게 원시시대부터 계속 진화해 온 인간의 본성"이라며 "불완전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화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인 이타성을 연구하면 여러 경제적 갈등을 원활하게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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