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소멸시효의 덫에 걸려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됐다. 법원은 국가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법령이 마련돼야 한다"며 책임을 입법부로 돌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고충정)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빨치산 가담 혐의로 억울하게 총살당한 농민 오모(당시 28세)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54년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사회 분위기상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만으로 50여년간 국가기관에 대해 권리행사를 하거나 진실규명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일 뿐 국가가 권리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조사한 것은 진상을 규명하고 국민의 화해와 통합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지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국민 전체 여론과 국가 재정 등을 고려해 관련 법령을 마련하는 방법 등으로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오씨는 49년 5월 경북 경산군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벌이던 군경에 의해 빨치산으로 오인 받아 마을 논에서 총살당했다. 유족들은 2005년 진실화해위가 생긴 뒤 진실규명을 신청, 올 3월 국가의 불법행위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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