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4일 임진강 수해 방지 실무회담이라는 공식 석상에서 임진강 참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60여년 간 대립해 온 남북관계 역사에서 북측의 공식 유감 표명은 이번을 포함해 8차례 밖에 없었다.
이런 유감 표명은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향후 남북대화를 더 고위급으로 격상시키고, 대화 국면에서 장애물을 없애겠다는 북측의 희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북측은 실무회담 자리에서 지난달 6일 발생한 황강댐 무단 방류로 인한 민간인 6명 희생에 대해 남측 대표단이 경위 설명과 사과를 요구하자 준비된 답을 읽어 내려갔다.
"임진강 사고로 남측에서 뜻하지 않게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북측의 입장 표명은 두 문장으로 짧았지만 '유감'과 '조의'라는 핵심 단어에서 그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북측은 무장간첩 청와대 침투 시도인 1968년 1ㆍ21 사태에 대해 4년 4개월 만인 72년 유감을 표시한 것을 비롯해 그 동안 7차례 밖에 사과하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들이 식량 지원, 북미관계 개선 등 급한 일이 있거나 남북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만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담 석상에서 유감과 함께 희생자 가족에 대한 위로의 뜻까지 표시했다. "임진강 상류 언제(堰堤ㆍ댐)의 수위가 높아져 방류했다"는 기존 해명과 비교하면 "더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긴급히 방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날의 해명은 더 진전된 것이었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직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면서도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책임을 회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유감 표명의 수위를 잘 알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원래 김정일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공식적 자리에서 남측에 감사나 유감을 잘 표명하지 않는다"며 "전략적 결단을 한 김 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측이 이번 회담에 신속히 호응할 때부터 그 의도는 분명했다. 북미관계 개선이 시급한 북측 입장에서는 남북관계과 북일관계 등을 함께 푸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 목표에 맞추기 위해서도 남측과 대화에 나설 시점이 됐다.
정부도 지난 해와 달리 유연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왕자씨 사건 직후에는 북측의 유감 표시에도 불구하고 공식 사과를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대신 "포괄적으로 보면 북한의 사과라고 본다. 충분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북측에서 나름대로 경위를 설명한 것으로 본다"(통일부 당국자)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16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쳐 5만톤 이하의 대북 식량 지원 재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고위급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미 양자접촉까지 맞물릴 경우 당분간 대화 기조는 막을 수 없는 큰 흐름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사진=파주 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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