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풍경 '마라, 사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풍경 '마라, 사드'

입력
2009.10.14 06:40
0 0

몇 가지 상이한 차원들이 극장 안에 공존한다. 프랑스의 사드 후작이 1801~1814년 정신병원에 수감됐고 환자들과 공연을 했다는 점, 프랑스혁명 당시 급진파 두목이었던 장 폴 마라가 1808년 한 여인에게 암살당했다는 사실 등은 무대의 대전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1963년 독일 극작가 페터 바이스가 사드의 대본을 근거로 실험성 다분한 연극 '마라, 사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혁명의 광기, 이상 심리 상태 등 비상식적 전제 위에 서 있는 이 작품은 지금 상종가를 치고 있다. 연출가 박정희가 극단 풍경을 통해 이 작품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이라는 큰 무대에 올린 뒤, 매진 기록이 이어진다.

혁명 대 반동까지는 아니지만, 개혁 대 보수의 대립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지켜봐온 한국 사람들에게 혁명(마라) 대 보수(사드)로 선명히 나뉘는 대립 구도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족하다. 무대 한켠에 3m 높이의 제단을 설치, 3인조 록 밴드가 쉼없이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도록 한 발상도 성공적이다. 광기에 휩싸인 무대 상황처럼, 그들은 머리에 붕대를 동여맨 채 생음악을 연주한다.

격렬했던 역사의 현장은 이 극에서 철저히 뒤틀린다. 마라는 오늘도 단두대로 보낼 반혁명 분자들의 명단을 작성 중이다. 그러나 그는 고질인 피부병으로 늘 유황탕 신세다. 실제 무대에서 마라는 늘 욕조 속에 있다.

정사각형 무대의 대각선상에 위치하는 꼭지점에 항상 마라와 사드가 존재한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두 입장이다. 이를 시각화하는 중견 배우 홍원기(마라), 남명렬(사드)의 연기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사드가 마라에게 혁명 포기를 종용하며 마라를 암살하는 여인을 애무하는 식이다.

8명의 코러스는 혁명에 휩쓸리는 군중도 됐다가, 사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목에서는 성의 광란적 풍경을 직접 연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오직 혁명에만 몰두하는 마라를 조롱 섞인 표정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자유란 "개처럼 일하다 죽을 자유"일 뿐이기 때문이다.

입장 전 관객마다 나눠주는 카드는 투표를 위한 것이다, 사드에 한 표냐, 마라에 한 표냐 하는. 원작자의 의도다. 극 말미에서 해설자는 객석을 향해 자신의 입장을 카드로 나타내 달라고 한다. 암전 없는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끝까지 깨어 있으라고 요구한다. 1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