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 핵 문제의 강경대응에 대한 러시아 협력을 얻는데 사실상 실패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이란 핵 문제와 관련, 추가 경제제재 공세보다는 외교적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3일 러시아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은 후 "현 상황에서 이란에 대한 제재 위협은 비생산적"이라며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 시설 등 이란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이용 여부가 증명되지 않을 경우 이란에 대한 금융ㆍ에너지ㆍ무역 제재조치를 취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유럽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돌연 취소도 이 같은 일환으로 러시아에 던진 당근이다.
라브로프 장관과 공동회담장에 나선 클린턴 장관은 "이란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푸는 게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동시에 외교적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두 국가간의 입장차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MSNBC와 AP통신은 이날 "러시아가 추가적인 이란 제재조치에 대한 동의를 얻으려는 미국의 노력과 입장을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참여하는 회담을 통해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촉구해 왔다. 러시아의 이란 제재 반대가 공식화함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추가제재 추진력은 한층 약화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대이란 제재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군축과 핵무기 폐기 등의 사안에서 양국간의 공조계획을 재확인했다. 냉랭했던 양국관계는 7월 모스크바 정상회담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양국관계의 리셋(resetㆍ재가동)을 천명한 후 급격히 개선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적극 손을 내미는 이유는 러시아의 협력 없이는 비핵화, 군축 등 주요 외교 과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클린턴 장관은 13일 라브로프 장관과의 만남에 앞서 "(6월 골절상 입은)나의 팔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리셋됐다"라는 말로 열의를 보였다. 이날 회담은 아프가니스탄전쟁, MD 철회, 북핵,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승계 등 방대한 주제에 있어서 양국의 이해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루지야 분쟁 문제 등 이견을 노출한 부분도 있었다.
앞서 양국 정상은 7월 핵탄두 1,500개, 발사수단 500개까지 줄이는 데 합의했다. 아프간 협력도 낙관적이다. 클린턴 장관을 수행하는 미 정부 관계자는 AP통신에 "최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이송 병력과 무기 등의 러시아 상공 통과를 합의하는 등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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