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지방 사립대 교수다. 10년 전 국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과 수도권 대학 교원 채용에 지원했다 연거푸 고배를 마시자 지방대를 택했다. 정부가 지방대 통폐합을 추진 중인 요즘 K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후학을 키우는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은 사라졌다. 한낱 직장인이라는 생각만 든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익숙한 지 오래다. '왜 이 길을 택했을까'후회 뿐이다. K는 다른 직업을 가질 계획이다.
정원도 못 채우는 지방사립대
입시철이 다가오면 K는 머리를 싸맨다. 신입생 모집 때문이다. 교수마다 담당 지역과 고교, 입학원서 할당량이 떨어진다. 비교적 '고참'에 속해 수도권 고교를 맡게 된 K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방 고교를 담당하게 된 후배 교수들은 최악이다.
지난해에는 원서 유치 실적 '제로'를 기록한 교수가 문책을 받았다. 그래서 입시철만 되면 교수들은 고교 입시 담당 교사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한다. 입학원서 좀 써달라며 식사 대접도 하고, 경우에 따라 노래방에도 간다. 물론 교수가 박봉을 털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입학 정원 채우기는 어렵다. 수시ㆍ정시 모집이 끝나기 무섭게 교수들은 합격생 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등록을 설득한다. 신입생 모집 결과가 교수 평가로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학과 존폐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 대한 학사 관리가 느슨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학생이 대학의 주수입원인 상황에서 교수가 F학점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려는 학생이 생기면 쫓아가 만류하는 지경이다.
K의 연구 활동이나 수업 개발 활동이 활발할 리 없다. 좀 과장해 말하면, 제대로 된 연구 논문을 써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매년 논문 몇 편을 학회에 제출해 보지만 형식적이다. 요즘엔 학회의 논문 심사가 엄격해져서 내용 없는 논문은 학회보에 실리기도 어렵다. 외국에 나가 최신 학문적 조류를 파악해 수업에 반영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모집 정원 감축,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 상시화한 상황에서 학문적 성취와 수업의 질 향상은 지방 사립대 교수에겐 지난한 일이다.
그로 인해 교육의 질적 수준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K는 지방 사립대의 상시 구조조정으로 학생들의 수업권이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다고 했다. 교수 숫자를 대폭 줄이는 대신 살아 남은 교수들에게 비전공 과목을 가르치게 하는 대학이 많다. 생소한 과목을 강의하기 위해 대도시 야간 대학에 가서 자신이 가르쳐야 할 과목을 청강하는 교수까지 있다.
대학 교원의 주당 교수 시간을 9시간으로 규정한 고등교육법을 준수하는 지방대는 거의 없다. 겸임 교수, 대우 교수, 시간 강사가 담당하는 수업을 확대하는 것은 지방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비용 절감책이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앞 다퉈 개설한 야간 대학원의 수업까지 맡아 교수들이 '봉사'를 하게 된 것도 대학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서라벌대학 부정입학 사건 소식에 K는 재정 기반이 취약한 지방 사립대는 늘 부정 입학의 유혹에 노출돼 있으며, 여러 지방 사립대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정부의 부실 지방 사립대 퇴출 및 통폐합 등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히 진행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처럼 경제적 잣대만 들이대선 안 된다는 게 K의 생각이다.
옥석 가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K는 지방 사립대 중에도 몸집을 줄이고 전문 분야로 특화하면 상당 수준의 교육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대학, 지방 국ㆍ공립대 지원 규모의 절반 이하만 지원해 줘도 더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대학이 있다고 했다. 그는 몇몇 대학을 단순히 없애고 합치는 구조조정은 저항을 부르고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라고 했다.
천편일률적인 구조조정보다는 개별 지방 사립대의 특성과 잠재력을 면밀히 살펴 옥석을 분명히 가려야 구조조정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을 K는 내놓았다. 정부가 새겨 들을 만한 말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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