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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월식(月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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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월식(月蝕)

입력
2009.10.1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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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

● 삶의 한 장면을 마치 사진 한 장처럼 잡아낸 이 시. 월식이라는 자연현상이 일어날 때 인간의 어느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시 속에서는 어둠에 잠긴 마을로 한 사나이가 지나간다.

'붉게 물든' 한 사나이는 발자국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개도 짖지 않는데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라고 시는 간명하게, 극렬하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 단 하나의 문장에는 한 여인의 긴 일생이 다 담겨있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동안 마을에 들렸다가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진 이 사나이는 누구였을까?

누님의 일생으로 치명적으로 들어왔다가 치명적으로 다시 나가버린 이 사나이는 어둠에 잠긴 마을을 빠져나가 다시 어떤 어둠으로 들어갔을까? 그리고 남겨진 누님은?

길고도 긴 소설이 될 법한 이 이야기를 시는 아주 얄미울 정도로 간단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러나 그 간단한 시 뒤의 여운은 너무나 길어서 한참동안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월식이 지나가고 달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겠지만 아, 누님은 결코 월식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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