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 역사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36개 역사 연구 단체는 13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과학기술부가 9월 말 마련한 개정 교육과정 시안은 "역사 교육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안에 따르면 고교 역사 선택과목이 3개에서 2개로 줄어들고 1학년 역사도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운영된다. "퇴행과 파행을 거듭하는 정책에 역사 교육이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학계의 인식이다.
송상헌 역사교육연구회 회장은 "역사 교육에는 계열성이 중요한데 2009년 시안에 따르면 계열을 완성하지 못하거나, 아예 역사를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열성이란 중학교에서 전근대사를 공부한 뒤 고교 1년 과정에서 근현대사 중심의 통합역사를 배우고, 2ㆍ3년 과정에서 한국문화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심화 학습을 하도록 짜여진 역사 교육 체계의 골간을 의미한다.
불투명한 이유로 역사 교육 체계를 흔드는 데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이영석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해 자의적으로 커리큘럼이 변경되는 것을 보고 자괴감을 느꼈다"며 "중둥교육 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역사학계의 의견을 먼저 듣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김민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대표도 "역사 교과서는 한 시대의 보편적 가치나 인식수준을 반영하는 것임에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부 특정 집단의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시안은 하토야마 일본 총리 취임 이후 실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한ㆍ중ㆍ일 공동 역사교과서 집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안에 따르면 현행 3개 역사 선택과목 가운데 하나가 줄어드는데, 탈락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동아시아사다. 조광 한국사연구회장은 "오카다 일본 외무장관도 최근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공동 교과서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역사 교육 위축으로 인해 공동 교과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산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개편안의 핵심은 고교 1학년을 국민공통교육과정에서 제외시켜 고교 과정 전체를 선택중심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역사 과목뿐 아니라 모든 과목에 적용된다"며 "역사학계의 반발은 시안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