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퇴 압력에도 불구, 1년반 이상 버텨오던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3일 전격 사퇴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된 거래소 '허가주의' 입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사퇴한다"는 취지의 성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또 "한국거래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증권거래소 가운데 유일한 공공기관"이라며 "G20 의장국 위상에 걸맞게 공공기관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밝혔다.
그의 임기는 2011년 3월까지로, 1년5개월이 남은 상태. 그는 성명 발표 직후 기자실을 방문했으나, 일체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인사만 하고 황급히 집무실로 돌아갔다.
증권업계는 이 이사장의 사퇴를 '시기의 문제'였을 뿐 '예견된 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거래소 임원으로 임명돼 이후 인맥을 바탕으로 지난해 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에 됐지만, 이후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푸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사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에는 거래소 전반에 대해 금융감독원 검사와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올해 초에는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를 받는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이 모든 것이 이 이사장의 퇴진을 위한 '압박'이었다는 것이 거래소 주변의 시각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정 이후 임금이 삭감되고 구조조정에 따른 신분 불안 가능성이 제기된 뒤에는 이사장의 조직 장악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사퇴의 변으로 '허가주의' 입법안의 통과를 강조한 것도 예전처럼 민간기관으로 환원되기를 바라는 내부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퇴 시점이 거래소가 국정감사를 이틀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거래소측은 "국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전격 사퇴'는 의원들의 예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사퇴와 함께 한국금융증권도 이두형 사장(11월 임기만기) 후임자 선정 작업에 나설 예정이어서, 증권업계 유관기관 CEO 자리를 놓고 고위관료 출신과 현 정권과 인연이 깊은 금융계 인사 등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두 기관의 후임 CEO 후보로 박대동 전 예보 사장, 임영록 전 재경부 2차관, 김영과 금융분석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특히 거래소는 이철환 시장감시위원장이나 이창호 경영지원본부장의 승진설이 나온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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