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일 북측에 대화를 먼저 제의하고 나선 것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방침에는 지난 8월 이후 북측이 계속 유화 공세를 펼쳐왔지만 어느 순간 돌아설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단거리 미사일 5발을 발사함으로써 향후 상황 전개가 녹록하진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북측은 지난 8월 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잇따라 평양으로 초청했다. 남북과 북미관계를 동시에 풀어가자는 신호였다.
게다가 같은 달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문단까지 남측을 방문,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함으로써 남북대화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정부는 그러나 북측의 유화 분위기를 "전술적 변화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북측이 주도하는 남북대화 움직임에 끌려갈 수 없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북한 핵 문제도 남북대화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정부의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9월 초 임진강 무단 방류 사태로 남측 민간인 6명이 희생되면서 대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북측이 9월 말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통해 남북대화 의사를 타진해오고,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이 결정적이었다.
원 총리가 5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뒤 북한의 6자회담 조건부 복귀 입장이 공개됐다. 10일 한중일 정상회의에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남측에 전해달라"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까지 공개되면서 정부도 남북대화에 나설 명분이 생겼다.
게다가 북측이 1일 발생한 주민 11명 귀순과 관련해 계속해서 항의를 해오는 부분도 심상치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주민 귀순을 빌미로 대화 공세를 틀어버릴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대화를 제의하고 나선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 임진강 수해 방지나 적십자 이산상봉 등은 우리 정부에 큰 부담이 없는 주제라는 판단도 있었다. 정부는 편한 주제로 남북 대화 틀을 일단 구동시킨 뒤 차츰 의제 수위와 회담의 격도 높여가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두 가지 회담 제안 말고도 앞으로 우리가 내놓을 카드가 많다"고 전했다.
문제는 북측의 의중이다. 북측은 핵 문제는 북미 간 현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군부가 앞장서 이날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주변 분위기도 악화됐다.
여기에 맞서 이 대통령도 10일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한다면" 이라는 전제를 남북대화와 대북 지원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른바 선(先) 핵폐기론이다. 이 때문에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른 시일 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정상원 기자
사진=파주 홍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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