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영화의 거장인 그리스 출신의 코스타 가브라스(76) 감독이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가브라스는 1970년대 남미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추악한 이면을 추적한 '의문의 실종'(1982), 그리스 독재정권의 정치 테러를 다룬 '제트'(1969), 아버지의 나치 활동을 고발하는 딸의 고뇌를 그린 '뮤직박스'(1990) 등으로 명성을 쌓았다. 칸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의문의 실종')과 심사위원상('제트'),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인 금곰상('뮤직 박스') 등을 받았다. 민감하고 딱딱한 정치적 소재에 재미를 접목, 정치영화의 대중화에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 받는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인 그는 세계적인 영화 박물관인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도 맡고 있다. "첫 방문한 한국이 너무 마음에 들어 떠나기 정말 아쉽다"는 가브라스를 12일 오전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만나 그의 영화와 세계관을 들었다.
_박찬욱 감독이 당신의 '엑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를 리메이크 한다.
"박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다. 10, 11일 그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성을 지녔다. 정치적인 장르영화를 만드는, 세계적으로 무척 중요한 감독이다. 그가 내 영화를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에게 '난 당신을 믿는다. 내가 할 일은 당신의 영화를 보러 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아무 문제 없이 개봉해 잘 상영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부산에 와 박 감독이 재편집한 '박쥐' 특별판을 다시 봤다. 너무 좋은 영화다."
_1958년 데뷔했으니 감독 생활 50년이 넘었다. 그 동안 당신의 영화도 변해왔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영화를 시작할 무렵 세상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이분화 돼 있었다. 당시 민주주의는 자유롭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그때 우리 세대는 공산주의가 낙원을 건설할 거라 강하게 믿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의 결과를 불렀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매체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영화도 변해야 했다."
_예전엔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사실 난 영화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싫다. 시대가 요구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정치적 담합도, 대학 강의도 아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의 이해와 재미를 우선시 한다. 관객에게 감정의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세상은 아직 살아갈만하지만 그러나 바뀌어야 할 점도 많다는 낙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_지금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이 늘고 있고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도 반성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사 소통하려는 자세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_정치적 탄압 등으로 그리스 대신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그리스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스는 정치적으로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예전 독재정권 시절 등 정치적 격동기를 망각한 채 살고 있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그리스나 이전 세대가 정치를 잘못해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공언을 해놓고선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프랑스에선 정치에 기대지 말고 소규모 모임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해 가자는 움직임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_영화감독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젊었을 때는 감독 아닌 배우를 누구나 꿈꾼다. 그게 바보 같은 꿈이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 나도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거의 매일 영화를 봤다. 요즘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분도의 포도'(194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 등을 너무 좋게 봤다. 글이 아닌 영화로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고, 영화학교에 들어갔다."
부산=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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