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나타나자 팬들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맥그리거는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팬들과 포옹했고, 때론 키스도 아끼지 않았다. 여성 팬들은 맥그리거의 친절함에 거의 까무러쳤다.
'인기 떨어진 맥그리거, 참 용쓴다' 생각할 때 여성들의 로망 조지 클루니가 등장했다. 그런데 왠걸. 클루니도 맥그리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사인과 포옹과 키스로 팬들의 혼을 빼놓았다. 한국에서 '친절한 톰 아저씨'라 불리는 톰 크루즈의 쇼맨십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만일 맥그리거와 클루니가 스칼렛 요한슨이나 드류 배리모어였다면 아마 기자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지난달 찾은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 행사는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의 많은 영화제들은 스타들이 빨간 카펫을 다소곳이 밟으며 축제를 시작한다. 어느 여성 배우가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한 드레스로 얼마나 더 플래시 세례를 받았는지가 인터넷을 데운다. '숨막히는 뒤태'라는, 호흡곤란과 전혀 무관한, 선정적인 묘사도 어김없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하나 같이 천편일률이고, 인간적인 숨결이 느껴지진 않는다. 국내의 레드 카펫 행사는 김빠진 맥주나 탄산음료 같은 진부한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아시아 최대를 자부하는 부산국제영화제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스타들이 총출동한다지만 개막식의 레드 카펫 행사는 팬들과의 접촉을 완강히 거부한다. 스타들의 요령부득도 문제지만, 유리 벽으로 막아놓은 듯한 행사 진행도 스타들의 체취를 차단한다. 그래서일까. 스타들이 묵는 부산 특급호텔 1층 로비에선 일본 아줌마 부대가 진을 치고 숨막히는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토론토영화제는 개막식에서 스타들이 패션 경연을 펼치는 식의 대형 레드 카펫 행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마다 상영을 앞두고 각각의 레드 카펫 행사를 연다. 화려한 치장보다 관객과의 친밀도를 더 따지는 것이다. 관객들은 스타와의 신체접촉이라는 꿈 같은 추억을 만든 뒤 영화를 관람한다. 아마 그들 대부분은 토론토를 다시 찾을 것이다. 매년 50만장이라는, 믿기지 않을 수치의 티켓이 팔리는 토론토영화제의 성공비결은 의외로 단순한 것일지 모른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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