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함정임 새 소설집 '곡두'/ 헛것인 줄 알면서도 홀릴 수밖에 없는 가족·옛사랑의 추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함정임 새 소설집 '곡두'/ 헛것인 줄 알면서도 홀릴 수밖에 없는 가족·옛사랑의 추억…

입력
2009.10.13 01:40
0 0

함정임(45)씨의 일곱번째 소설집 <곡두> (열림원 발행)의 인물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무엇인가에 홀려있는 인물들이다. 곡두는 '환영'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그들은 무언가에 홀려 통영으로, 송정으로, 목포로, 더블린으로, 킬리만자로로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

표제작과 이어지는 '자두', '상쾌한 밤'은 연작소설이다. 남녀가 재혼을 앞두고 겪는 여러가지 일을 두 사람과 여자의 이복오빠의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 그들이 홀려있는 대상은 복잡한 인연으로 얽혀있는 가족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내던져진 존재가 '어떤 근원'이 필요함을 느끼는 순간, 헛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캐내어 가려는 몸부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 함씨의 말이다. 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굴레이기도 한 가족의 양가적인 속성에 대한 인물들의 치열한 고뇌가 소설을 밀고 간다.

표제작의 화자는 평생 한 번 본 적도 없는, 화가인 이복오빠가 머무는 먼 통영까지 간다. 결혼식 때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삶이란 오묘한 것이어서 어느 순간 전혀 쓸모없는 것 같던 형식도 필요해지는 때가 있었다'라는 화자의 진술은 그러나 핏줄이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방편이다.

'상쾌한 밤'에서는 큰 빚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 때문에 개인파산자가 돼 아내와 위장이혼한 뒤 지두화(指頭畵)를 그리며 전국으로 떠돌고 있는 이복오빠가 화자이다. 여동생이 통영까지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자신을 감아오는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역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모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쫓기는 심정보다는 쫓는 사람의 애틋함'으로 동생에 대한 동질감을 갖게 된다.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방황하지만 도착해보니 제 자리일 때 느끼는 당혹감 같은 복잡한 내면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추억이란 얼마나 힘이 센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앉아 있는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도 어떤 이들에게는 헛것이다. 소설 속에서 옛 추억에 잠기는 이들은 제각각 어떤 상실감과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다. 죽은 옛사랑이 가고 싶어했던, 예이츠의 시에 나오는 더블린 북쪽의 섬 이니스프리를 찾아 헤매는 엔지니어('행인'), 남편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뒤 옛 애인과의 인연이 얽힌 갈매기를 보기 위해 목포행 열차에 오르는 여성('달콤한 눈물')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함씨가 2004년부터 5년 간 발표한 단편들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서는 1990년 등단 이래 강렬한 이미지에 기댄 감각적 글쓰기를 중시했던 작가가 전신(轉身)을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록작들은 소설 본래의 서사성에 충실해졌다. 2006년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부임해 부산에 머물고 있는 함씨는 "원하지 않은 커다란 경험(남편이었던 소설가 고 김소진의 요절)을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순리적으로 순화가 되고 좀 편안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고 <곡두> 를 쓴 심정을 대신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