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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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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보석

입력
2009.10.1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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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것이 편한 인생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산 운동화를 사골 고듯 신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그렇게 싼 것을 걸침으로써 그들에게

밸런스를 맞추고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다

지금 나의 남루 속에

천금같이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청노새 눈망울처럼 절실한 그리움의 보석은 무엔가

무엔가 말이다

어제는 분명 긴 봄밤이었는데

오늘 잠을 깨니 단풍 이는 가을 새벽이었다

짧은 꿈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붉은 떨림-

일장춘몽 속에 나 진정 세상 모두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겐 세상 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었다

한없이 걸어들어가는 구슬문이었다

사랑은 덧없이 싼 가을 낙엽이었으나 나

오늘도 보석 같은 단 하나의 사랑을 따라간다

● 비싼 것들의 정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비싼 것들은 무엇일까? 고대나 중세나 근대의 비싼 것들은 현대에서 비싼 물건들과 다르다. 석유 때문에 전쟁이 나는 현대와는 달리 고대의 석유는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어서 천덕꾸러기 노릇만 했다. 일킬로에 백만원이 넘는다는 송이버섯도 대륙 저편에서는 그저그러한 버섯의 일종일 뿐, 도대체 가격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할까.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분들도 이 세상에는 있고 증권에다 금융자본으로 이 세상을 주름잡는 분들도 있고 옷에 장신구에 목숨을 거신 분들도 있고 그와는 정반대인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목숨을 건 운동가들도 있다.

일장춘몽 속에서 모든 것을 사랑했노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 말할 때 세상 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었다라고 말할 때 이 세상의 모든 비싼 것들은 무력해진다. 비싼 것들 사이에서 가장 싼 사랑같은 낙엽, 그 낙엽의 계절을 우리는 지금 살아간다.

허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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