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연구가 한복진(57) 전주대 문화관광대학 전통음식문화전공 교수는 유년 시절에 학교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면 집안이 텅 비어 있는 때가 많아 아쉬웠다.
한 교수의 어머니 황혜성(1920~2006) 여사가 대학(숙명여대) 교수, 궁중음식 연구가, 저술가로 활동하느라 집을 자주 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교수는 성인이 되면 평범한 주부로 인생을 보내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다.
그런데 딸은 이제 어머니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그것도 아주 똑같이 걷고 있다.
황혜성 여사가 식품영양학 교수이자 저술가였는데, 한 교수의 현재 직함이 그렇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언니인 한복려(62)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한복선(60) 식문화연구원장 등 세자매 가운데 어머니의 본업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교수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어머니와 닮은 꼴이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 교수가 최근 어머니 황 여사의 '한식 대중화'의 길을 받드는 작업을 또 추가했다.
신간 <우리 음식의 맛을 만나다> (서울대출판문화원)는 지난 100여년간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온 우리 음식을 한 교수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다. 우리 음식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한식 세계화의 걸림돌과 해결책은 무엇인지도 정리돼 있다. 우리>
한 교수는 한식의 경쟁력은 음식에 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식은 발효시키고, 썰고, 다져서 만든다"며 "만드는 사람이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완성하기 어려운 게 한식"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한국 음식에 이렇게 '손품'이 많이 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식재료가 충분치 않았던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선조들은 농한기에 굶지 않기 위해 가을이면 보존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김치, 된장 같은 발효 음식이 발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발효 음식이 세계 각국의 건강, 웰빙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교수는 "우리 선조들은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저(低) 칼로리 식재료를 사용했는데, 이게 바로 다이어트 음식"이라며 "튀겨 만드는 중국 음식, 날 것 중심의 일본 음식에 비교해도 한국 음식은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식이 이런 강점이 있음에도 한식 보급의 주역이 돼야 할 한식 전문 조리사가 체계적으로 양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한 교수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2년제 대학을 포함해 전국에 조리과가 100개가 넘지만 한식 조리과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전국 대학에 한식 조리과 정원이 더 많아지고 실무 위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위해 관련 기관이나 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반갑지만 지원액이 작고 나눠주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한식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 교수는 한식의 세계화를 낙관하고 있다. 그는 "한식이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 이후 불과 20여년"이라며 "지금의 발전 속도를 유지하면 한식은 10년 내에 세계인의 음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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