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출신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42)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몇 년 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씨로부터였다. 빛과 물, 색채, 파장 등 자연 현상들을 탐구하는 엘리아손의 작품 세계에 깊이 매료됐다던 진씨는 지난해 거기에서 받은 영감을 관현악곡 '로카나'(산스크리트어로 '빛의 방'이라는 뜻)로 만들었고, 이 곡은 몬트리올 심포니와 서울시향에 의해 캐나다, 미국, 중국, 서울서 차례로 연주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엘리아손은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작가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이 보고 자란 신비로운 자연들을 과학적으로 탐구한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2003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내부를 인공 태양과 안개로 채운 '날씨 프로젝트'는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줬고, 지난해 뉴욕 이스트강을 따라 초대형 인공폭포를 설치한 프로젝트 역시 대단한 화제였다.
엘리아손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빛과 공간, 색채를 주제로 한 설치 작품과 회화, 사진 등이 나왔다. 전시 개막에 맞춰 첫 내한한 엘리아손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개별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자연을 소재로 택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자연 현상을 실내로 끌어오는 그의 작업은 기술자, 과학자, 건축가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과학은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살피기 위한 도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의 출발은 '색채 실험'이라는 제목의 유화 시리즈다. 색채학자, 화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360가지 색으로 나누고, 그를 원형 캔버스 위에 1㎝씩 그린 것이다. 2차원의 색채들은 그 옆의 작품 '당신의 공유 공간'에서 3차원으로 확장된다.
반원 형태의 거울을 벽에 수직으로 붙이고 6가지 색의 조명을 비춰 거울 양쪽으로 생긴 빛과 그림자 옆으로 둥글게 번져가는 빛의 파장을 보여준다. 마치 일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방 안에서는 흰 색과 보라색 조명을 받은 큰 사각 거울이 회전하고 있다. 거울의 움직임에 따라 벽면에서 겹쳐졌다 분리되는 빛들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에 있다. 물을 채운 수조 앞에 프리즘을 놓은 '테이블 위 색채 실험'은 빛의 굴절과 물의 반사를 이용해 스크린 위에 무지개를 띄운 작품이다. 관람객이 물을 휘젓거나, 스크린 아래 달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무지개는 파도처럼 춤을 춘다. 커튼 속에 숨어있는'보색 차트'라는 이름의 방은 빛 속을 걸어가는 듯한 근사한 체험을 선사한다. 연두빛 안개가 자욱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공간 속을 걷다보면 어느새 안개는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한다. 공간의 양 벽면에 빨강과 녹색의 형광등을 설치한 이 방 속에서는 늘 바라보기만 하던 색채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작업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 엘리아손은 한참 생각하더니"예술이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미술관과 갤러리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바깥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기를 바란다. 예술 작품이 쇼핑몰의 상품과 다른 것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02)515-9496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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