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원효(元曉ㆍ617~686)스님은 육두품 출신이란 신분적 제약 속에 살면서, 세계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 마음(一心)'에서 체계를 세운 불교사상가이며 실천가였다.
중관학파(中觀學派)에 따르면 모든 법은 공(空)이며 생멸(生滅)이 없이 본래 고요하다고 했고, 이에 대하여 특히 '마음학'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식학(唯識學)은 주관적 인식 그 자체까지 없다고 할 수 없고 모든 법은 있음(有)과 없음(無)에 통한다고 했다.
인도에서 중국의 불교계까지 이어진 이런 '없음(빔)'과 '있음(참)'의 대립 문제를 소통하여 화해하려 애쓴 사람이 신라의 스님 원측(圓測)이었고, 원효 스님이 이 대립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사상을 '한 마음(一心)'으로 종합하여 우리 마음의 철학의 길을 환히 밝혔다.
"무릇 한 마음의 근원은 있음(有)과 없음(無)을 떠나서 홀로 조촐하고, 삼공(三空)의 바다는 참(眞)과 속(俗)을 아우르면서 맑으니, 맑아서 둘을 아우러도 하나가 아니며, 홀로 조촐하여 모퉁이(邊)를 떠났으나 가운데(中)가 아니다.
가운데가 아니면서 모퉁이를 떠나기 때문에 법을 지나지 않으나 곧 없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상(相)이 없지 않으나 곧 있음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하나가 아니면서 둘을 아우르기 때문에 참이 아닌 일[事]도 비로소 속되지 않고, 속되지 않은 이(理)도 비로소 참(眞)이 되지 않는다."(금강삼매경론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니라는 것은 불교의 바탕이 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원효 스님은 '있음과 없음'과 함께 '참됨과 속됨', '가운데와 모퉁이'라는 짝을 더하여, 이런 모든 대립개념의 갈등요소를 뛰어넘어 조화한다는 화쟁(和諍)의 사상을 마련했다.
참되고 성스러워 마땅한 종교적 마음의 자리를 세속 세간의 현실적 세계에까지 넓힌다는 있음ㆍ없음과 진ㆍ속과 중ㆍ변의 아우름은 이 7세기 후반에 신라 귀족불교를 대표하는 의상(義湘ㆍ625~702)과 비교하는 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원효는 의상처럼 중국에 유학하거나 화엄학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면서, 신분적 제약 속에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도 불성(佛性)이 있어 성불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대승기신론소> 에서 이룩하고 <금강삼매경론서> 에서 '일심'으로 뚜렷이 했다. 금강삼매경론서> 대승기신론소>
불교의 역사를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구도의 역사라 한다면, 마음의 문제를 인식과 삶의 문제로 고민하고 실천해온 자취는 불교에 이어 발달한 유교에서도 심성론(心性論)을 거쳐 실심실학(實心實學)을 이룩한 우리 철학의 승리였다 할 것이다.
이것은 '있는 것(존재)'에 대한 놀라움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하는 서양 사람과 얼마나 다른 철학의 전통인가? 없음(無)과 빈탕(空)과 텅 빔(虛)에서 영성을 발견하는 것이 불교의 마음, 동양의 영성으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하느님도 '없어 계신 이'로 이해했던 다석(多夕) 유영모나 함석헌의 '한국신학'이 나올 수 있었을 터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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