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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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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막걸리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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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지에서 한국 대기업의 옥외 간판을 보고 왠지 가슴 뿌듯할 때가 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수년 전 도서전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역 앞 빌딩 옥상에는 '기아(KIA)자동차' 대형 광고물이 있었다. 밤이면 네온사인 불빛으로 빛나는 이 광고판을 자동차 선진국인 독일에서 한국 기업이 분투하는 상징처럼 느꼈다.

일본은 아직 한국상품 불모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가면 한국 기업의 존재는 더 두드러진다. 꽤 오래 전이지만 요르단에서 택시의 20% 이상이 한국차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한국 기업의 활약은 대단하다. 북미는 물론이고 중국 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 기업은 세계 유수의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에서는 이런 풍경을 만나기 힘들다. 한국 대기업의 광고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흔하지 않다. 한국 자동차를 거리에서 마주친다거나 한국 전자제품을 상점에서 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성의 백색가전 일본 영업 철수가 보여주듯 일본은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진출이 가장 어려운 시장 중의 하나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의 한국산에 대한 갈증을 그나마 해갈해주는 것이 이자카야(居酒屋)라는 일본 선술집에서 만나는 한국 술이다. 지난해 일본 법인 설립 20주년을 맞은 진로소주의 'JINRO'를 비롯해 몇 종류의 한국 소주들이 잘 팔리고 있다.

최근 여기에 한국 막걸리가 가세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막걸리 수출량은 2,635톤(213만4,000달러 어치)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9% 늘었다. 이 가운데 일본 수출이 전체의 89%인 2,336톤을 차지한다. 대일 막걸리 수출은 한류 바람과 거의 정비례해 10년 전인 1998년 481톤에서 2004년 2,069톤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4,891톤으로 10년 만에 꼭 10배 증가했다.

일본에도 도부로쿠 또는 니고리자케라고 부르는 탁주가 있다. 한국처럼 청주를 만들기 전 단계의 술로, 발효한 쌀 성분이 포함돼 색깔이 흐리고 당분이 남아 단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일본에 쌀문화가 도입되면서부터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역사 또한 깊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주세법을 도입하면서 각 가정 제조는 금지됐지만 지금도 신사(神社)에서 가을 햅쌀을 올리는 제사를 지낼 때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민가가 늘어선 기후(岐阜)현 시라카와고(白川鄕)의 시라카와하치만(白川八幡) 신사를 비롯해 10월 중순에 도부로쿠 축제를 여는 신사도 여럿 있다.

비슷한 술이 있는데도 유독 한국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도수가 낮고 상대적으로 상품화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도부로쿠는 알코올 함량이 청주와 같은 15%이다. 막걸리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주류인 맥주와 거의 비슷한 6~8%다. 특히 한류에 관심 있고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 일본 여성들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것이 판매 확대의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우리 문화 전파하는 전통의 술

시장이 커지면 일본 주류업체도 막걸리 시장에 진출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숱한 일본 '기무치'처럼 그 술 또한 도부로쿠가 아니라 '막코리'(막걸리의 일본식 발음)일 수밖에 없다. 김치, 비빔밥, 막걸리 같은 한국 음식문화가 정착해 일본인들이 한국을 정말 가까운 나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가길 기대해 본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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