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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헤르타 뮐러의 작품세계/ 독재사회의 생채기로 얼룩진 아웃사이더의 삶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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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헤르타 뮐러의 작품세계/ 독재사회의 생채기로 얼룩진 아웃사이더의 삶을 기록하다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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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소설가 헤르타 뮐러(56)는 여성 작가로는 12번째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독일 내에서도 대중적으로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지만, 최근 몇년 새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빠짐없이 거론된 작가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독일 현대작가인가 아니면 자기 둥지를 더럽힌 여자인가'. 그를 둘러싼 독일과 루마니아인들의 양분된 평가는,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독일과 루마니아 문화 어디에도 완전히 편입되거나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적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문학은 고향을 떠났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어정쩡한 아웃사이더의 그것이다.

1953년 독일어를 사용하는 루마니아 바나트 지역의 작은 마을 니츠키도르프에서 출생한 뮐러는 어머니는 소련으로 추방돼 강제노동을, 아버지는 트럭운전수를 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가난한 가족에서 자랐다. 가난과 생활고라는 원체험은 이후 그가 한 작품에서 "배고픔의 천사가 하늘 위에 떠있다고 믿으며 24시간 동안 빵 한쪽으로 버텼다"고 표현할 정도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면서 목가풍의 사랑이나 자연의 불가사의함을 노래하는 시를 썼던 뮐러는 대학을 졸업한 뒤 기계공장의 통역사 일을 했으나 차우셰스쿠 치하의 비밀경찰 세큐리타테에 포섭되지 않아 수난과 고초를 겪고 끝내 해직을 당하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은 온갖 검열을 거치고 1982년 루마니아에서 발표한 연작 단편소설 <저지대> 였다.

독일에서는 1984년에 소개된 이 작품은 1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됐으며, 한 어린 아이의 시선을 통해 환상적이고도 분석적인 언어로 소수계 독일민족이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의 숨막힘, 공허와 허위의식을 드러냈다.

이 작품으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동구권 독일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은 뮐러는 한 인터뷰에서 차우셰스쿠 독재를 신랄히 비판, 출판과 여행금지 조치가 내려지자 남편과 함께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1987년 발표한 산문집 <맨발의 2월> 도 자전적 성격의 작품으로 루마니아에서 보낸 공포스러운 유년시기를 가혹하리만큼 세밀하게 표현해 독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거기서 겪은 독재사회의 생채기는 뮐러의 작품세계를 관류하고 있다. 1989년 발표한 장편소설 <외발의 여행자> 는 그가 독일 서베를린에 정착하기까지의 심정, 이주후 대도시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없는 개인이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하에서 도구화되는 경험은 뮐러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장편소설 <그때 벌써 여우가 사냥꾼이었다> (1992)는 정보부에 의해 감시당하는 여교사를 주인공으로 독재정권 하의 루마니아에서 벌어지는 추적과 체포, 공포의 세월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해 발표한 <따뜻한 감자는 따뜻한 침대> 는 루마니아의 독재뿐 아니라 쿠르드족 박해, 걸프전, 독일 내의 반 외국인 감정 등 보다 넓어진 관심사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각이 녹아있는 산문집이다.

김진혜(41) 연세대 외국어학당 독어과 강사는 "서유럽인들이 보기에 뮐러는 그들이 겪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장성할 때까지 경험했으며, 그 과거를 고통스럽게 극복한 작가"라며"현실정치에 대한 참여적 발언으로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뮐러는 짧은 에세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작품이 거의 소개돼 있지 않다.

한편 올해도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됐던 고은(76) 시인은 아쉽게도 수상하지 못해, 한국문학은 노벨문학상의 꿈을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 연보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 출생

1973~76년 티미소아라 대학에서 루마니아문학과 독일문학 전공

1976~79년 기계공장에서 통역사로 근무, 정보원 돼달라는 비밀경찰 요청 거부해 해고

1982년 <저지대> 발표, 등단

1984년 독일에서 <저지대> 무삭제 발표, 아스펙테문학상 수상

1985년 브레멘문학후원상 수상

1986년 <인간은 세상의 커다란 꿩이다> 발표

1987년 <맨발의 2월> 발표, 남편인 작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독일로 이주

1989년 <외발의 여행자> 발표

1992년 <그때 벌써 여우가 사냥꾼이었다> <따뜻한 감자는 따뜻한 침대> 발표, 독일비평가협회상 수상

1994년 <마음 짐승> 발표, 클라이스트문학상 수상

2001년 <고향> 발표

2005년 베를린자유대 객원교수, 베를린문학상 수상

2009년 <숨쉬는 그네> 발표, 하인리히하이네협회 명예상 수상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루마니아, 망명의 문학

루마니아의 문학은 '망명'을 통해 제 존재를 과시해온 문학이다. 유럽의 변방으로 내내 강대국의 욱대김과 영어 불어 독일어의 위세에 눌린 점이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루마니아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미르치아 엘리아데, 외젠 이오네스코, 에밀 시오랑은 모두 모국을 떠나 이방의 언어로 문학을 한 작가들이다.

루마니아 수도 부큐레슈티에서 태어난 엘리아데(1907~1864)는 소설가로서보다 종교학자로 더 유명하다. 부쿠레슈티대 문학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우연히 '인도철학사'를 읽고 인도로 떠난다.

귀국 후 모교에서 '요가:인도신비주의의 기원'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양 종교 연구와 강의를 하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조국이 공산화되자 파리로 도피했고, 유럽 대학들을 떠돌다 1956년 미국 시카고대에 자리를 잡았다. 필생의 역저 <종교사상사> 외에 동양적 신비주의의 소설 <벵골의 밤> 등을 썼다. 사망 당시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이오네스코(1909~1994)는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프랑스인으로 숨을 거뒀다. 어머니가 프랑스인으로 소년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부쿠레슈티대에서 프랑스어를 강의하기도 했다. 스스로 '반희곡'이라는 부제를 붙인 <대머리 여가수> <의자들> 등의 작품으로 현대인의 삶의 바탕에 깔린 형이상학적 불안과 고통을 극화한 그는 현대 전위극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삶의 허무를 지독한 냉소와 격조 있는 아포리즘으로 설파, '허무의 사상가'로 불리는 시오랑(1911~1995)도 1937년 프랑스에 정착,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시시한 말을_진심으로_지껄일 때뿐이다."(<독설의 팡세> 에서)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 역시 차우셰스쿠 정권의 등쌀을 견디지 못해 독일로 망명, 독일어로 고국의 현실과 떠도는 이들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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