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 지음ㆍ장성주 옮김/세미콜론 발행ㆍ전5권ㆍ각권 9,000원
"저마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웠다… 난 어리석은 인간이야,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이 잔뜩 있으니까, 국가가 정의를 내세울 수 있는 거겠지."(5권 233쪽)
'쇼와(昭和)시대 최고의 지식인', '망가(만화)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1928~1989)의 만년 대표작 <아돌프에게 고한다> 가 발표된 지 20여년 만에 한글로 번역됐다. 데즈카는 <철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불새>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만화에서 고갱이를 이루는 것은 늘 문명의 살풍경에 갇힌 생명의 존엄함이다. 불새> 밀림의> 철완> 아돌프에게>
이런 주제의식의 뿌리에는 2차 세계대전의 동원체제 속에 성장한 작가의 배경이 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뭉개는 어떤 가치도 거부했는데, 거기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국가주의도 포함됐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는 우화의 형식을 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직설적 목소리로 전쟁의 광기와 그 때문에 황폐화하는 인간의 내면을 고발한 작품이다. 아돌프에게>
작품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일본과 독일이다. 1936년 올림픽이 열리던 베를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히틀러가 사실은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미스터리를 밝혀줄 서류가 일본으로 흘러들면서,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고베의 두 독일계 소년은 전쟁의 한복판으로 빨려들게 된다.
첩보 장르의 긴박한 리듬으로 작품은 전개되는데, 만화적 흥미 못지않게 역사를 대하는 데즈카의 시각이 도드라진다. "일본은 스스로 광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민간인 수천, 수만 명이 도륙당했으며… 성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따르지 않는 사람을 '비국민'으로 낙인찍었다."(2권 13쪽) 테즈카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미치광이로 변해간 평범한 사람들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가는 결말의 배경으로 1970년대 이스라엘을 선택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그 광기가 현대에도 갖가지 명분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장치가 된다. 나치 장교와 유대인 도망자였던 두 아돌프는, 수십년이 흐른 뒤 팔레스타인 전사와 시오니스트 학살자로 상황이 뒤바뀐 채 조우한다.
데즈카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얘기한다. "전 세계 수천만의 인간들이 정의라는 것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덧없는 희망입니다만."(5권 246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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