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케이블TV에 이변이 일고 있다. 케이블 오락채널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롤러코스터'(토요일 밤 11시 방송)의 '남녀탐구생활' 코너가 웃음의 파도를 몰아치며 인기 해일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시청률(TNS미디어코리아 조사) 3%를 넘어 케이블TV로선 대박을 쳤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사소한 것 하나부터 너무나 다른 남녀'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코너의 인기 포인트는 생활 속 남녀의 진면목 보여주기. 인기 미국 드라마 시리즈 '엑스파일'의 스컬리 요원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 서혜정씨의 '~요'로 끝나는 무미건조한 내레이션도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 '~요' 식의 댓글을 다는 '남녀탐구생활 놀이'가 한창일 정도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 김기호(33), 김지수(26)씨가 말하는 남녀에 대한 견해와 '남녀탐구생활' 집필기를 '~요' 식 글쓰기로 재구성했다.
■ 김지수 "남자, 이해 못할 동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정해진 시간은 없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어금니를 물어야 해요. 평균 하루 5~6시간, 9시간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입술이 부르트고 다크서클은 줄넘기를 할 만큼 내려와요.
요즘 왕인기를 얻다 보니 되레 스트레스로 말라 죽겠어요. 시청자들의 댓글과 아이디어 공모 글이 우릴 쌈 싸먹을 지경이에요.
'초절정 쓰나미 어메이징' 대본을 위해서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해요. 유행하는 단어와 아이디어를 만나면 심박수가 주체가 안될 정도로 빨라져요. 잊을세라 기록을 하고 대학생들과도 만나 수다를 떨어요. 깨알 같이, 깨방정을 떤다 등 어른들도 알아챌 수 있는 유행어를 쓰려고 해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털털하고 무심하다 생각했지만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보면 충격 게이지가 마구 올라가요. 남자들은 볼일을 본 뒤 손을 잘 안 씻는다는 '화장실'편 회의를 마치고는 까무러칠 뻔했어요. 그날 남자친구 손을 잡는데 너무 찜찜했어요. '너는 손을 씻니?' 물었더니 이게 말을 더듬거려요. '가끔씩'이란 대답에 완전 경악했어요.
남자들은 친구만 만났다 하면 술 먹고 멍멍이가 된다는 '동성모임'편 회의를 하고도 이해가 안 됐어요. 저렇게 놀다가 저렇게까지 망가지는구나, 그 과정을 알게 됐지만 아직까지도 머리는 도리질이에요. 남녀의 생태가 이리 다르니 회의 중에도 한미FTA보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져요.
최근 방송된 '국군의 날 특집'편은 저의 파란만장한 '곰신'(고무신) 시절이 담겨 있어요. 남친을 무려 2년 동안 기다렸어요. 그래서 군대리아(군대 햄버거), 짬밥, 전투축구 등의 군대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요. 그런데 병장이 된 남친이, 여친이 기다려줬으니 결혼을 해야 하나, 그딴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난 그때 분노의 융단폭격을 가했어요.
그렇게도 다른 남녀가 너무나 똑같아 날려버린 아이디어도 있어요. 바로 '자취방'편이에요. 남자들은 여자 자취방하면 핑크빛 침대보와 레이스 달린 커튼 깔끔한 방을 떠올려요. 그러나 현실은 환상을 깨뜨려요. 제가 만일 재미만을 위해 여자 자취방을 깔끔한 것처럼 묘사하면 그건 순 구라가 되잖아요. 그래서 아쉽지만 덮었어요.
■ 김기호 "너무 깔끔 떨지 맙시다"
아이디어는 생활 속에서 건져요. '국군의 날 특집'편은 당삼 빳데루(아주 당연하게도) 제 경험이 담겨 있어요. 재입대 영장 받는 꿈, 저도 숱하게 꿨어요. 국방부에 전화를 걸어 따졌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입대를 하래요. 그런 꿈은 회의 때 나온 남자들이 다 꿨다고 그래요. 그래서 초특급 아이디어다 싶어 택했어요.
여자들 생태, 모다 이해 안 가지만, 남자의 휴대폰을 훔쳐보는 것은 정말 천인공노할 짓이에요. 왜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명백한 도발이에요.
모두가 환경부 지정 '청정녀'인 척 깔끔 떠는 것도 재수없어요. 남자들은 끈적끈적한 게 딱히 묻지 않는 한 볼일 보고 손을 씻지 않아요.
남자들이 만났다 하면 술로 멍멍이가 되는 건 인정해요. 예쁜 여자 동창이야기, 예쁜 정치인 이야기, 예쁘고 청순한 직장여자 이야기, 예쁘고 청순하고 글래머인 이웃여자 이야기 등 맨날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며 노는 게 남자들 우정이에요. 그게 윤리예요.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우리 프로그램에 주파수를 잘 못 맞추기도 해요. 그렇다고 신세대 '외계어'(신종어)를 쓰며 젊은 층에 무작정 아부하진 못해요.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이런 단어, 쓰고 싶어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해요. 외계어도 억지로 쑤셔넣으면 재미 없어요. '나는 소중하니까' 등 유명 CF멘트를 살짝살짝 날리는 게 더 매콤해요.
아이디어를 얻자고 인터넷도 많이 봐? 얼마 전 한 남자의 너저분한 자취방 사진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런데 이런 된장!(젠장) 여자들 자취방도 피차일반이래요. 대장의 융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어요.
역시 수다가 소시지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회의가 아이디어의 보고예요. 한 10분 정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면 할지 안 할지 견적이 딱 나와요.
지금의 내레이션은 저희 내용을 가장 재미있게 잘 전달할 수 있어 채택한 방식이에요. '동물의 왕국'처럼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설명이 남녀 생태 파악에 잘 맞아 떨어진 거예요. 지금은 남녀의 고교생활을 새 아이디어로 곱씹고 있어요. 남자고교는 누가 짱 먹느냐가 최대 관심사고, 여자고교에선 남성적인 매력의 언니에 시선이 쏠리잖아요. 어찌 좀 간지나게 재미있을 듯 하지 않나요.
● 김지수 추천, 김기호의 명 내레이션
- (상사가) 식사시간에 일 이야기를 하는 밥맛 떨어트리기 기술이 등장해요.('점심시간'편)
- 언제 터도 틀 거 빨리 방구를 트기로 결심해요. 한번이 어려워 그렇지 성공만 하면 편리하고 실용적인 항문하이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어요.('방구트기'편)
- 그때 판매원이 간지가 좔좔 흐른다며 감탄을 연발해요. 그 말이 남자에게 '입어보기까지 했는데 넌 인간도 아니야'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해요.('쇼핑'편)
- 아싸가오리 남이 쓰던 때수건을 '득템'(얻음)했어요.('목욕탕'편)
- 남자의 옷은 수건의 기능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화장실'편)
● 김기호 추천, 김지수의 명 내레이션
- 백화점은 원래 백 바퀴를 돌아서 백화점이니까요.('쇼핑'편)
- 오늘 맡은 배역은 카디건이 없어 죽을 병에 걸린 비련의 여주인공이에요.('감기몸살'편)
- 미니홈피에 들어가자마자 오늘의 방문자 수를 확인해요. 16명밖에 되지 않아요. 자존심이 상해요. 로그아웃을 해 반복적으로 내 미니홈피를 스스로 방문해요. 방문자 수가 30이 되었어요. 이제야 마음에 들어요.('인터넷'편)
- 여자는 (음식값 계산을 위해) 친구들에게 현금을 받았지만 카드로 결제하며 카드깡을 해요.('동성친구 모임'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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