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에 맞서 지그재그… 100m 갔지만 느낌은 태평양!
스스로 항로를 결정해 항해하는 독립심과 판단력, 대양(大羊)을 탐험하는 모험심, 바람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이 모든 것이 요트(Yacht)의 매력이요, 요트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영국의 귀족들이 어린 자제들에게 요트를 가르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달 24일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항 '남해군 요트학교'에서 1인승 요트 체험에 나선 기자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요트에 오르자 남동풍이 건듯 불어온다. 저 멀리 일본 후쿠오카(福岡) 앞바다에서 비롯한 바람이리라.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요트의 특성을 살린다면 이대로 일본에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레 온다.
비록 시속 4노트(초속 2m)의 남실바람이지만 돛은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해졌다. 선미(船尾)에서는 포말이 일었고, 물건마을을 감싸 안은 야산들이 눈에 띄게 멀어지고 있었다.
이날 본격적인 항해에 앞서 기자는 이론, 지상 교육을 받았다. 30분 간 이어진 이론 교육은 요트의 항해 원리에 집중됐다. 뒤,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돛 가득 안고 항해하는 것은 일반적인 돛단배와 같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이르러서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요트도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는 앞으로 진행할 수 없다. 바람에 돛이 저항력을 일으키지 못하면 이내 죽어버리게 마련.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좌, 우 각각 45도로는 항해할 수 없어 이 구역을 노고존(No Go Zone)이라 부른다. 노고존을 좌우로 살짝 벗어나면 돛은 이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마파람을 좌우 45도로 번갈아 맞으면서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크로스 홀드(Close Hauled)라는 항해술이다. 마치 태백산맥을 오르는 열차처럼 피드백을 반복하면서 목적지에 닿는 방법이다.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45도 비껴가기는 하지만 엄연히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 이를 거스른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기자는 '비행기를 띄우는 양력의 원리'라는 오종렬 요트학교장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45도 각도로 바람을 받은 돛은 위에서 보면 비행기 날개의 단면도처럼 곡선이 되는데 둥그렇게 휜 면의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기는 속도가 빠르고, 반대편의 공기 속도는 느리다.
'속도가 빠르면 압력이 낮아지고, 속도가 느리면 압력이 높아진다'는 베르누이의 정리가 적용돼 바람을 맞아 둥그렇게 휜 면의 바깥쪽에는 압력이 낮아지고, 반대편 압력은 높아진다.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힘이 작용한다는 건 상식. 이 힘, 양력을 이용해 요트는 바람을 거스른다.
바람을 좌우 45도로 번갈아 맞으려면 방향 선회, 택킹(Tacking) 기술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 30분 간의 지상 교육은 택킹 훈련이 주를 이뤘다. 요트의 진행 방향을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90도 틀면서 폭 1.45m의 비좁은 요트 안에서 앉은 위치를 바꾸는 게 만만찮다.
바람을 맞아 잔뜩 기운 쪽으로 체중이 쏠리면 뒤집히기 십상이다. 조향타를 밀어 방향을 바꾸면서 요트 가운데 앉아 돛이 바람을 받아 팽팽해지는지 확인한 뒤 반대편으로 이동해 앉고 조향타를 중립에 놓는 게 순서다.
드디어 출항. 요트를 바다에 띄우고 몸을 실었다. 방파제 안, 내항에서 수십 차례 택킹을 반복했다. 그렇게 1시간여, 자신감이 생길 때쯤 오 교장이 모터보트를 타고 나타났다. "이제 방파제를 넘어 큰 바다로 나갑니다. 보트를 따라오세요." 대양 진출, 벌써부터 가슴이 설?다.
방파제 밖 바다는 역시 내항과는 차원이 달랐다. 잔잔하던 파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도 세지 않은 날인데 큰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왔고, 요트가 파도를 뛰어넘으면서 1m 가까이 솟구쳤다.
물 색도 내항의 푸른 빛에서 검은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시선을 올려 수평선을 바라봤다. 2㎞ 정도 떨어진 작은 섬을 빼고는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방파제에서 불과 100여m 나왔을 뿐인데 태평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섬까지 내쳐 달리고 싶었다. 약한 바람이라도 계속 불어만 준다면 30분 안에 항구 앞 작은 섬에 닿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귀항 지시가 떨어졌다. 영화 '실미도'의 설경구처럼 "보내 주십시오"라는 외치고 싶었지만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오 교장에게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깊게 태킹, 뱃머리를 항구로 향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고 돌아오는 길은 약간의 지루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순탄했다. 항구 뒤편 언덕에 해가 걸리면서 만들어 내는 석양. 바다는 푸른 빛을 잃고 황금으로 물들었다.
택킹을 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랫줄에서 꾸득꾸득 말라가는 생선,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인, 마을 앞 소나무 그루터기에 올라 앉아 졸고 있는 개…. 작은 항구 마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바다에서의 완상은 요트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남해=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요트, 체험코스부터 고급까지 전과정 수강료 50만원대
바닷가에서 저 멀리 떠 있는 요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살갗이나 태울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요트 수업을 받아볼 일이다.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 둬도 무방하다. 한 번 타 보는 건 5만원 안팎. 입문 숙련 고급 등 단계별 수업은 각각 10만원대다.
국내 요트의 역사는 40년에 달하지만 '호화 스포츠'로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1990년대까지 저변 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실제로 10여 년 전만 해도 요트 수강료는 100만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충남 전남 경남 등 바다에 접한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양 관광을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요트 저변 인구가 3만여 명으로 급증했고, 수강료도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경남 남해군이 설립하고, 더 위네이브(The Winave)가 위탁 운영하고 있는 남해군 요트학교는 체험 입문 숙련 고급 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루 8시간 씩 이틀간 진행되는 체험 과정은 요트의 원리 및 각 부분 명칭 등 이론 교육과 초보 항해로 구성된다. 입문 과정은 3일 간 8자, 삼각 등 코스를 도는 요트 레이스 기초 수업과 요트가 뒤집혔을 때 조치 요령 등을 배운다.
숙련 과정도 3일인데 이 과정에서는 스스로 항해 계획을 세우고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요령 등을 습득할 수 있다. 이틀 간의 고급 과정을 통해 앞서 배운 것을 반복 숙달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 항해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남해군 요트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용은 체험 11만원, 입문 16만5,000원, 숙련과 고급 각 14만3,000원으로 모든 과정을 다 수료하는 데 드는 수강료는 56만1,000원이다. 기간은 하루 8시간씩, 10일이다.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로 수업을 듣는다면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다.
수업에 사용하는 장비는 1, 2인승 딩기요트. 길이 3.86m, 높이 5.64m로 작지만 요트의 모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오종렬 남해군 요트학교장은 "요트는 대자연 속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 그 가치는 무한대"라며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레포츠"라고 말했다.
■ 요트의 역사
● 요트는 고대 돛단배에서 비롯했다. 기원전 6,000년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유물에 돛과 노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배의 그림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 바람의 방향에 크게 구애되지 않고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근대적 요트는 1660년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선물한 2척의 수렵선을 시초로 삼고 있다.
● 한국에서 요트를 시작한 사람은 연희전문학교 설립자인 언더우드다. 그는 1930년께 목수를 시켜 요트를 제작하고 '황해요트클럽'을 만들어 한강 하류에서 요트를 즐겼다.
● 일반인들에게 보급된 것은 70년 대한요트클럽이 설립되면서부터다.
허정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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