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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외길 70년 대림산업 "이젠 녹색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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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외길 70년 대림산업 "이젠 녹색경영"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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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이 10월 10일로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대림산업의 탄생이 곧 한국 건설산업의 태동이라는 점에서 이 날은 건설업계가 고희를 맞는 날이기도 하다. 1955년부터 55년간 한국 100대 기업으로 남아있는 기업이 7개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의 생존은 전쟁 그 자체다. 더구나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격한 풍랑 속에서 건설사로서 70년을 존속해왔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근ㆍ현대사와 함께한 기업

대림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말 작은 목재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부친의 한일정미소에서 일을 하던 이재준(1995년 작고) 창업자는 인천 부평역 앞에 '부림상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투자금은 3만원에 직원은 7명. 이 창업자는 '해방이 되면 건설 수요가 늘 것이다'는 판단 아래 47년 사명을 대림산업㈜으로 바꾸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 대림산업은 경부ㆍ경인ㆍ호남고속도로를 비롯해 서울지하철, 포항제철, 국회의사당,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한국은행, 광화문광장 공사를 수행, 한국 근ㆍ현대사와 괘를 같이하며 성장했다.

국내 최초의 건설사인 탓에 대림은 항상 '대한민국 최초'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66년 미 해군이 발주한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 항타 공사로 착수금 4만5,000달러를 받아 '해외건설 외화 획득 1호' 기록을 세웠다. 73년에는 아람코사의 '정유공장 보일러 설치공사'를 따내 '국내 최초의 중동 진출'과 '해외플랜트 수출 1호'의 쾌거를 이뤄냈다. 이후 '첫 이란 및 아프리카 진출(75년)' '브랜드 아파트(e-편한세상) 런칭(2000년)' 등 숱한 '최초' 기록을 세웠다.

외길ㆍ정도 경영의 산물

대림산업은 장수 비결로 한눈 팔지 않은 '외길 경영'과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도 경영', 그리고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꼽는다. 대림은 근ㆍ현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수 차례 기업 확장의 기회와 유혹이 받았다. 그러나 '잘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창업자의 유지에 따라 건설ㆍ유화 업종에 집중했다. 이후에 생긴 삼성ㆍ현대그룹이 산업 전분야로 영역을 넓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연구 개발과 기술인력 양성에 집중 투자해 내실을 다졌다. 지금도 자금력과 기술력이 탄탄하기로 소문난 기업이다.

녹색경영 통해 100년 기업으로

대림은 이번 창립 70주년 행사를 국내 최초로 온라인으로 치렀다. "형식적인 체육관 행사는 이산화탄소를 과다하게 배출할 뿐 직원간 소통이 안되니 온라인으로 내실을 기하자"는 이해욱 부사장의 제안을 이용구 회장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대림은 70주년을 계기로 친환경사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육성키로 하고 올해 초 '저탄 그린(Green) 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이라는 비전을 선언했다. 녹생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용구 회장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도전이자 또 다른 기회"라며 "녹색 경영을 통해 100년 기업으로 가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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