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앙숙'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외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터키 외무장관과 에드바르드 날반디안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은 10일 취리히에서 스위스의 중재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국경을 개방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양국은 의회 비준을 얻어 발효된 날로부터 2개월 내에 국경을 개방하기로 했다.
이날 서명식에는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대표 등 양국 관계 정상화를 촉구한 국가들의 외교수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역사적인 결단"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국의 적대관계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 시절 1차대전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스만투르크의 오스만제국과 인종ㆍ종교적으로 갈등관계에 놓여있던 아르메니아는 1915~1917년 사이 자국민 150만명 가량을 오스만 제국이 조직적으로 살해했다며 이를 '인종청소(genocide)'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터키는 내전으로 양측이 30~50만명씩 희생됐다며 조직적인 학살은 없었다고 반박한다.
이런 불편한 관계를 딛고 양국이 협정에 서명한 이유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번 협정으로 터키는 EU가입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노리고 있다. 유럽행 송유관이 지나는 캅카스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도 꾀할 수 있어 터키로서는 이득이 크다. 가난한 아르메니아 역시 이웃 터키의 국경 폐쇄에 따른 경제적 장애를 제거하고 서방과 교역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국민의 적대감이 여전해 의회 비준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9일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배신자"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세르즈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대량 학살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렸다"며 흔들림 없는 입장을 밝혔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 카라바흐 영토 분쟁 문제도 걸림돌이다. 터키는 93년 기독교인 아르메니아계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아르메니아가 점령하자 동맹국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어 국경을 봉쇄했다. 한편 레셉 타입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협정 다음날인 11일 아제르바이잔을 고려한듯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해결 전에는 국경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찬물을 끼얹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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