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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나라말은 우리 영혼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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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나라말은 우리 영혼의 그릇

입력
2009.10.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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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글날이 돌아왔다. 올해는 더욱 우울해진 마음이다. 초가을의 청명함과는 달리 한글날을 맞으면서 자꾸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YS는 대통령이 되자 느닷없이 '세계화'를 부르짖었고, 전 국민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공청회도 없이 부랴부랴 실시한 것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교육 시키기였다. 그러자 약삭빠른 부모들의 이기주의가 발동했다. 대통령보다 더 빨리 초등학교 1,2학년을 영어 학원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올해도 우울한 한글날

그 약삭빠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자식만은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 경쟁이 불 붙어 유치원생까지 영어 유치원에 줄을 세웠다. 영어교육 경쟁은 해마다 심해져 몇 년 전부터 '영어광풍'이라는 말이 예사로 쓰인다. '영어광풍'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이 있다. 전 사회적, 전 국가적으로 영어교육이 가져온 폐해는 광풍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통제를 못하는 무자격 원어민 교사의 범람, 저질 교육에 낭비되는 막대한 사교육비, 모든 학과를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한심한 대학들, 모든 언론매체가 남발하고 있는 영어 표현. 이런 사태들이 모아져 한글 경시, 한글 오염, 한글 훼손, 한글 죽이기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가장 악랄한 점을 지적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내세운다. 첫째는 한글 말살 정책이고, 둘째는 창씨개명이다.

한 민족의 글은 그 민족의 정신과 영혼과 의식과 인식을 담은 그릇이다. 그것을 없애버리면 그 민족은 아무런 생각 없이 배부르고 등 따스한 것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 의식 없는 인간 군상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넋과 얼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려는 악랄한 시도, 그것이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글을 지키려는 운동은 바로 독립운동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국어학자들이 감옥살이

등 온갖 핍박을 무릅쓰고 나라말 지키기에 신명을 바쳤던 것이다.

그렇게 지켜낸 한글을 이제 우리 스스로 홀대하고 업신여기면서 영어를 떠받드는 행위로 문화식민지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작태를 세종대왕께서 내려다보시면 뭐라고 하실 것인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국민 전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한문을 익히려고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그러나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한글이 없이 중국 글을 썼더라면 독립국가로서 위신과 체통이 섰을까. 우리는 고유한 한글을 씀으로써 당당한 독립국가의 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광풍은 언제 멈추게 될 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세계어로서 영어를 공부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좀더 차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국력낭비를 막는 길이고, 우리 영혼의 그릇인 모국어를 지키고 보호하는 길이다.

어리석고 부끄러운 영어 광풍

모국어로 작품을 써내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영어광풍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 잘못된 행태를 막아보려 하지만, 모두가 경쟁에 사로잡혀 있는 이 집단 히스테리 앞에서 나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다시 한글날을 맞으며 세종대왕께 너무나 면목없고 죄송하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끝났고 '세계화'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세종대왕 앞에 떳떳하게 한글날을 맞을 수 있어야 한다.

김초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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