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순회의장을 맡으면서 집무실 앞에 EU기 게양조차 거부했던 '유럽통합 회의론자'바츨라프 클라우스(68ㆍ사진) 체코 대통령이 EU통합의 마지막 걸림돌이 되고 있다.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EU 미니헌법으로 불리는 '리스본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체코는 27개 EU 회원국 중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가 됐다.
대통령에 해당하는'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선출하고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EU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 리스본조약은 회원국이 모두 비준해야 발효가 되는데, 클라우스 대통령만이 서명을 계속 거부해 다른 회원국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내년 1월이 목표였던 발효시점도 안개 속이다.
설상가상으로 클라우스 대통령은 9일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다. 체코가 리스본 조약 기본권 헌장의 예외로 인정받아야 서명하겠다는 것.
전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에 협력한 독일ㆍ헝가리계 주민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는데, 리스본 조약이 이에 상충해 추방당한 이들이 유럽사법재판소에 재산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다.
회원국의 예외 요구를 각주로 붙인 전례는 있다.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는 동성결혼 합법화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점을, 영국은 EU 법률보다 자국 사법체제가 우위에 있다는 점을 예외로 인정받았다.
예외적용도 27개 회원국들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클라우스 대통령의 요구는 '공'을 EU측에 다시 넘긴 셈이다. 하지만 그가 "EU가 각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강경 반대론자였던 점에 비추어 기존에서 한발 물러난 이번 타협안은 긍정적이라는 해석도 많다.
그가 결국 리스본 조약에 서명할 것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나 그 시점은 체코 헌법재판소가 몇 주 후 리스본 조약 위헌여부에 대한 판결을 내린 뒤에나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은 "조약이 발효돼도 'EU 대통령(President of Europe)'같은 것은 없다"며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확대 해석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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