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도, 서양인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도 아니다. 현대 한국인의 복잡다단한 일상을 표현하는 데 종이를 원료로 해 만든 탈이 본격 등장한다. 규격화된 이미지를 벗어난 탈이 자아내는 독특한 질감에 90분의 공연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극단 '거기 가면'이 마스크 연극 '반호프'를 공연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양태를 어느 호프집 풍경에 비겼다. 언어는 없다. 그러나 배우들이 탈을 바꿔 쓰고 연기하니 40여 가지 유형의 한국 사람들로 거듭난다.
여기에 필요한 배우는 마임 훈련을 거친 4명. 공연 중간중간 탈을 바꿔 쓰며 이뤄내는 변신이 감쪽같다. 무대에는 샐러리맨, 노처녀 검표원, 외국인에서 소매치기까지 정확히 3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넌버벌 마스크 연극'의 주인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질감의 마스크다. 이승은씨가 재활용 종이를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이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라 만들기가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먼저 석고 모형에 재활용 종이를 이겨 만든 종이 찰흙으로 상을 뜬다. 이 무대의 작ㆍ연출자 백남영씨가 일일이 보고 실제 무대에 쓸 것인지를 결정한다.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강사로 있는 이들은 부부다.
이들이 마스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독일 보쿰의 루어대 등지에서 신체 연극과 넌버벌 연극에 대해 연구하면서부터. 2007년 귀국한 후 독일에서 했던 드라마 '미용실'의 기억을 되살려 대구시립극단에서 '공씨의 헤어 살롱'을 공연, 조용한 출발을 알렸다.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을 요하는 수공업적 작업이어서 대중적 관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번 무대는 그 대중적 시험대다. 부인 이씨는 "지난해 안동의 하회탈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은 세계의 표정과 한국의 표정 간에 차이와 보편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내년부터는 아비뇽, 에딘버러 페스티벌 등 유럽쪽으로도 진출해 우리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씨어터 디아더, 23일부터 11월 15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4시 7시, 일 4시. (02)764-7462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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