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낮 12시 김포공항.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실은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날렵하게 치솟았다. 이날 정 부회장을 태운 비행기는 현대차 그룹이 올해 구입한 자가용 비행기(BBJ2 기종). 정 부회장은 이 전용기 덕분에 3박4일의 짧은 기간에 러시아와 체코를 잇달아 방문, 바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글로벌 경영으로 '바쁘신 회장님'을 위한 전용기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경영진의 활동 무대 역시 전세계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외국 부호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돼 온 자가용비행기가 이제 주요 기업들이 촌각을 다투는 글로벌 '경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용기의 최대 무기는 역시 스피드. '주인님'의 일정에 맞춰 모든 스케줄을 짤 수 있다. 정몽구 회장이 5월 초 겨우 3박 5일간의 일정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등을 돌면서 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업무 일정에 맞춰 비행기 운항 시간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포공항에서 이착륙을 하기 때문에 인천국제공항까지 갈 필요가 없고, 신속하게 공항을 통과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내부 시설은 '떠다니는 호텔'로 봐도 무방하다. 보잉 '737-800'모델을 개조해 만든 BBJ2의 경우,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회의실과 전용 사무실 등을 갖춰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침실과 욕실, 식당 등 주거시설도 설치했기 때문에 하늘 위에서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현대차는 이 기종을 900억원정도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도 같은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말 유럽으로 출국한 이건희 회장도 BBJ2를 이용해 유럽 주요 국가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일정이 잘 노출되지 않은 것도 전용기의 한 특성이다.
LG그룹은 작년 5월에 들여온 걸프스트림의 G550을 사용하고 있다. 통상 18인승인 G550은 자가용 비행기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종으로, 구입가는 5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이용했다. 한진그룹도 걸프스트림 구형모델(G-4)을 보유하고 있는데, 조양호 회장 등이 이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주로 임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SK그룹도 이달 초 걸프스트림의 G550을 들여와 조만간 첫 비행을 앞두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전용기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출발해 두바이와 일본을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총 25시간 비행을 한 적도 있다"며 "편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전용기 구입으로 경영활동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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