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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글날은 지나갔지만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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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잊혀진 뉴스는 무엇일까. 어제가 한글날이었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한글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매스컴을 데웠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건립과 공휴일 지정 검토 소식 등이었다. 세종대왕 이야기는 접고, 공휴일 문제를 생각해 본다. 어제는 평일이었다.

언제나 한글날을 앞두고는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 사랑을 다짐하는 여론에 힘입어 공휴일 지정을 검토하지만 하루만 지나도 잊었었다. 지난해 국회의원 14명이 제헌절과 함께 한글날을 공휴일로 하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없다. 2007년엔 인터넷 상에서까지 한글날 살리기 운동이 일었고 국민들 사이에 공휴일 지정 서명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과 관심은 10월 9일로 끝났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이번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을 국제브랜드로 키울 방침이다. 공휴일로 해야 진짜 기념일이 됐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의견이 있겠지만 추진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68%가 공휴일로 하는 데 찬성했다고 덧붙였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삼켜 버리지 말고 이번에는 반드시 부활시키기 바란다.

■ 공휴일 추진 약속 잊지 말기를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는 '진짜 기념일이 됐다고 느낄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평일과 공휴일, 달력의 '까만 날짜'와 '빨간 날짜'가 그 날을 기념하는 데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경험하고 있다.

원래 공휴일이었는데 어찌하여 평일이 됐는지 돌아보면 흥미롭다. 1990년 10월엔 유난히 노는 날이 많았다. 1일 국군의 날(월), 2(화)~4일(목) 추석 연휴, 9일 한글날(화). 9월 30일(일)부터 열흘 동안 개천절(3일)이 추석과 겹쳤는데도, 제대로 일하는 날은 5일(금)과 8일(월) 뿐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로선 국군의 날과 한글날이 원망스러웠을 게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경총의 주장과 노동계의 반발이 맞섰다.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폐지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으나 노태우 대통령은 내심 경총의 주장에 동조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총무처가 총대를 메고, "글자를 만든 날을 공휴일로 하는 나라는 없다"는 논리로 밀어 붙였다. 국민적 반발이 문제였다. 그 해 8월 국무회의에서 폐지 방침을 확정하고도 한글날은 종전처럼 공휴일로 했고, 다음달 5일 이를 공표하여 1991년부터 평일로 만들었다. 한글날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습성은 여전하여 언론도 이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의 논리란 게 좀 뜨악하고 생뚱맞다. 일본식민지시대(1926년) 그렇게 어렵사리 만들었던 한글날을 해방 후 1946년부터 온 국민이 기억하자는 이유로 공휴일로 지정했다. 6ㆍ25전쟁 동안, 보릿고개와 청계천봉제공장 시절에도 엄연한 공휴일이었는데, 올림픽까지 치른 1990년대에 들어서 경제 부흥을 위해 한글날에 모두 일터로 나오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힌트를 주었다는 '글자 생일' 운운도 그렇다. 모든 글자 가운데 생일을 정확히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에 있는가. 혹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자신들의 부족언어로 지정한 날을 생일로 삼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북한도 한글날 같은 것이 있는데, 우리의 반포일(세종28년 음력 9월 상한)과 달리 창제일(세종25년 음력 12월 상한, 1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

폐지했던 이유 국민 공감 잃어

원래 공휴일로 했던 이유를 잘 알고 있는 터에 45년 뒤 공휴일을 없앤 이유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으니 이제나마 공휴일로 되돌리는 것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장관이 한글날을 앞두고 가졌던 마음의 반만 오늘 이후에도 유지한다면 약속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년 한글날은 토요일, 2011년은 일요일이니 내친 김에 서둘러 공휴일로 지정해도 '경제적 타격'은 완충될 터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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