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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사회적 감시없는 과학은 '오용의 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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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사회적 감시없는 과학은 '오용의 늪'에 빠진다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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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벡위드 지음ㆍ이영희 등 옮김/그린비 발행ㆍ304쪽ㆍ1만5,900원

존 벡위드(74)는 미국 하버드대 미생물학 및 유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69년, 동료들과 함께 대장균 박테리아에서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유기체의 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자를 완벽하게 분리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과학적 성취에 취한 것도 잠시, 그와 동료들은 그 기술이 곧 인간의 유전자 조작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자청, 연구 결과와 그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위험성도 함께 강조했다.

기자회견 이후 과학자들은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는다. 대중에게 필요 이상의 공포심을 심어준다거나 연구비 확보에 어려움을 줄 것이라는 게 그를 비판한 이유였다. 인간 유전자 조작은 50~60년 후에나 가능하다며 그를 비웃는 과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DNA 재조합 기법이 발견돼 생명 조작 가능성이 현실화한 것은 불과 4년 후였다.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는 과학자이면서도, 과학의 위험을 막기 위해 사회적 운동에 나선 벡위드의 자서전이다.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을 고민한 한 진보적 과학자의 삶이 들어있다.

벡위드는 유망한 청년 과학도였지만 한편으로는 문학청년으로, 또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관여하는 사회운동가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게 과학과 사회운동은 아직은 분리돼 있었는데 그때의 기자회견은 둘을 결합하는 계기가 됐다. '민중을 위한 과학'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과학의 군사적 이용, 컴퓨터와 프라이버시 문제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학 이슈를 제기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특히 우생학, 생물학적 범죄이론, 사회생물학 등과 강하게 맞섰다. 인간 혹은 생물은 유전적으로 우열이 가려져 있고 범죄형 인간은 특정 유전자를 타고 난다는 것이 이들 이론의 주장인데 그것들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이뤄진 강제 불임시술이나 나치의 인종 청소 등에 영향을 주었다.

벡위드는 1970년대 초반 스탠리 왈처 하버드대 교수에 맞서 'XYY 신드롬 프로젝트'의 문제를 공개 거론한다. Y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남자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소위 XYY 신드롬. 왈처 교수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XYY 유전자를 가진 남자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려 했다. 벡위드는 그러나 이 연구가 XYY 염색체를 가진 아이에 편견을 갖게 한다며 반대했다. 동료 교수들은 그를 외면했지만 벡위드는 끝내 그 연구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벡위드는 1970년대 중반에는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대결한다. 영국, 프랑스의 극우 인종단체가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하고 르 피가로 지에 "삶의 법칙들은 평등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칼럼을 싣던 때였다.

자연의 법칙으로 성별 분업, 위계적 사회구조 등을 설명하고 문화적 진화를 생물학적 진화로 환원하는 이 이론을 벡위드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을 만들고 사회생물학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그 때문에 극우 인종주의단체 KKK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벡위드가 추상적 이념논쟁에 빠져든 것은 아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과학의 오용을 교정하려 했으며 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우석 사건 등을 겪으며 한국의 과학자들 역시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을 통감했을 것이다. 과학과 사회운동 모두를 진지하게 고민한 벡위드의 삶은 그들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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