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지긋이 감고 머리를 깎고 있는 버섯머리 사내, 심술궂은 표정으로 천변에서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는 여인네들, 판자촌과 고가도로 교각과 고층건물이 혼재해 있는 청계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작품세계가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 12~15일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구보, 다시 청계천을 읽다' 전시회에서다.
서양화가 민정기씨를 비롯해 김범석, 김성엽, 이인, 임만혁, 주영근, 최석운, 한생곤씨와 소설가 윤후명씨가 종로와 청계천을 주무대로 한 구보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을 30여점의 회화로 형상화했다. 윤후명씨는 3~4년 전부터 문학작품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에 참여해온 것이 인연이 돼 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출품했다.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가 주로 활동했던 식민지 시기의 서울과 21세기 서울의 이미지를 교차시킨 작품들이 눈에 띈다. 예컨대 민정기씨의 '청계천_구보의 이발' 연작은 <천변풍경> 에 묘사된 이발소 풍경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두 점의 그림에서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은 구보로 동일하지만 이발소 바깥 풍경은 각각 1930년대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이다. 천변풍경>
청계광장 전시가 끝나면 서울 경운동 부남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27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전시작들은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운영하는 교보인터넷미술관(gallery.kyobo.co.kr)에서도 볼 수 있다.
'한낮의 풍경 속으로' '물을 끓였다' 등의 그림을 출품한 윤후명씨는 "구보의 소설을 다시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70~8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경탄했다"며 "이번 전시회가 문학과 미술의 활발한 소통을 꾀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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