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 과에 속하는 스컹크는 인간의 귀염을 받지 못하는 동물이다. 다가가면 독한 방귀를 내뿜는다고 알려진 때문이다. 정확히는 항문선(腺)에서 노란 액체를 내쏜다. 위험에 처하면 적의 얼굴을 향해 악취 나는 액체를 3~4m 거리까지 발사한다. 이게 냄새가 지독하고 눈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앞을 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인지 스컹크는 덩치가 큰 적을 만나도 겁내는 기색 없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하기 난감한 동물이다. 영어로 스컹크(Skunk)는 '싫은 놈'이란 뜻이 있다. 미 해군이 '미식별 선박(unidentified ship)'을 '스컹크'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영어사전에는 '미 해군 속어'로 나오지만, 미군과 우리 해군의 작전교범에도 쓰는 용어다. 레이더나 육안으로 포착한 해상 표적물의 정체를 식별하기 전까지 그렇게 부른다. 이를테면 레이더 상에 나타나는 항해 선박은 순차적으로 스컹크 알파(A), 스컹크 브라보(B) 등으로 지정하고 해군ㆍ해경 경비함정과 육군 레이더 기지 등을 연계해 추적, 감시한다. 그리고 선박 외형과 항로, 속력, 항해 행태 등과 선박 운항통보, 적함 식별자료 등 여러 정보를 이용해 정체를 확인한다. 대다수 스컹크는 이렇게 정체가 식별된다.
■때로는 경비함정이 직접 교신과 검문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외형과 동태 등 여러 정황상 위해(危害) 요소가 있거나 간첩선과 유사한 정체불명 선박이라고 판단하면 '의아 선박(Doubtful Ship)'으로 선포한다. 해군ㆍ해경 함정은 즉각 전투배치에 돌입하고, 육군 해안방어부대는 5분대기조와 탐색 헬기를 출동시킨다. 합동 대간첩 작전을 펴는 것이다. 그런데 간첩선은 외형과 항해 행태 등이 어선 등 일반 선박과 뚜렷이 구별된다. 또 공작 모선은 먼 공해에 머물고 레이더에 쉽게 잡히지 않는 반잠수정 등을 침투시킨다.
■이에 비춰 1일 강릉 앞바다에서 육군 레이더가 포착한 귀순 북한 선박은 간첩선 등 위험 선박으로 볼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 왜 일찍 '의아 선박'으로 간주하지 않았느냐고 떠들지만, 무장과 통신도 없는 전마선을 줄곧 감시하다 해안 근처에서 검문한 군의 대응에는 크게 문제 삼을 게 없다고 본다. 스컹크 생김새가 조금 이상하다고 대뜸 비상을 건다면, 전국 해안에서 수시로 대간첩 작전이 벌어질 것이다. "12마일 영해에 들어올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고 개탄하는 것은 바다에 무지한 탓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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