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고 국립국어원이 후원하는 대학생 토론왕 선발대회가 31일 충북대에서 열린다. 올해 토론대회의 주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4대강 정비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토론이란 어떤 사안이 옳은지 그른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논리적인 입씨름을 하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 주제가 '해야 하나'가 아니라 '해야 한다'라는 것도 우스운데 '시급히'같은 꾸밈말까지 붙었다. 이렇게 바보 같은 토론회를 하라고 국가예산을 끌어쓰다니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청소년 토론회가 교육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절대 명제를 걸어놓고 그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을 토론회라고 주장한다. 토론회만 그런 것은 아니고 작문 교육도 그렇다. 과거 정부에서는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환경보존, 통일을 주제로 글을 쓰라는 주문이 자주 등장했다. 언뜻 근사해보이지만 이런 주제를 한국 사회가 이룩해야 할 목표로 당연시하고 그를 위해 개인이 할 일을 생각하라는 주문이라는 점에서 자기만의 사고력을 확장시킨다는 교육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다. 주입식 학습의 또다른 형태일 따름이다.
4대강 정비 지지하면 대학생 토론왕?
중 고등학교에서는 철학이 아니라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각성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복고 윤리를 암기하는 시간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은 생략한, 이름만 다른 주입식 학습이다. 이런 토론 작문 윤리 교육도 답답했는데, 이 정부 들어서 그 수준은 더 떨어져서 1970년대로 돌아갔다.'
'공산당을 때려잡자' '간첩을 신고하자' '혼분식을 하자'와 같은 정부 구호를 내걸고 그 실천방안을 찾는 학생을 우등생이라고 부르던 시대에서 혼분식 대신에 4대강이나 기타 비슷한 국가정책을 집어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왜들 이러나. 청소년을 바보로 만들고 싶어서 죽기살기로 기를 쓰기로 작정했는가.
요즘 서울에서도 제일 풍요롭다는 강남에서는 초등학교마다 '독서골든벨' 대회를 연다. 2학기초에 과제도서를 10권 내지 20권을 선정해서 알리고 이 달쯤 그 책 내용 안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책 주제는 요즘 어른들의 관심사를 좇아 경제 돈 영어 지리서가 인기이다.
책만 많이 읽으면 좋다는 부모들이 나서고 허접한 책을 이런 방식으로 팔고 싶은 출판사들이 로비하고 학교까지 가세해서 살림이 넉넉한 학교마다 더 기승을 부린다. 즐거워야 할 독서가 의무가 되고, 스스로 골라야 할 책을 주변의 어른이 정해주는 것부터 비교육적인데 대회의 진행방식은 더 나쁘다. 모든 학생이 풀어서 1등을 가리려다 보니 책 전체의 의미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지엽말단적인 내용을 묻는 객관식 단답식 문제 풀이가 된다. 문제를 비비 꽈서 함정도 판다.
책 암기 독서대회, 병드는 초등학생
이렇게 책을 접한 아이들은 책을 공부의 도구라고만 여기니 책을 싫어하게 되고 스스로 사고하지는 않고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니 두뇌가 제대로 영글지 못한다. 한 마디로 창의력 없는 바보가 된다. 그냥 어리석게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도한 지식 습득, 특히 왜곡된 지엽말단의 지식을 외우는 과정은 어린이의 두뇌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정신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학원가에 '독서골든벨' 과목까지 등장했다니 과도한 경쟁을 짐작할만하다.
이명박 정부는 전국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고, 어린 학생들을 선행학습으로 몰고 가는 자율고 자립고 특목고 확대에 열 올리면서 바보 만들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거짓말을 하고 탈세를 하고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 환경영향평가도 안된 4대강 정비사업이 강행된다. 어른들의 세계는 벌써 카오스이다. 그나마 미래는 나아져야 하는데 정부도 개인도 청소년을 바보 만드는 방향으로 너무도 부지런하다. 제발 멈춰라.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아이들이 우선 불쌍하고 사고력 없는 사람을 엘리트라 부르는 미래 한국의 경쟁력도 걱정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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