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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아원서 받은 사랑 시민들에 돌려 드릴래요" 미사리 느티나무의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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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아원서 받은 사랑 시민들에 돌려 드릴래요" 미사리 느티나무의 보답

입력
2009.10.0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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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따사롭고 바람 선선한 가을날 오전, 경기 하남시 미사동의 한강 산책로. 한강 조정경기장에서 미사대교로 이어지는 5.3km 산책로는 평일인데도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소금 뿌린 듯 하얀 메밀꽃밭과 주변 카페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멀지 않은 한강 한가운데에 떠있는 당정섬…. 모두 부지런히 놀리는 두 다리뿐 아니라 눈과 코, 귀까지 즐겁게 하는 풍광들이지만, 산책로의 주인은 흙길을 따라 늘어선 959그루의 느티나무들이다.

하지만 이곳 느티나무들은 여느 산책로 가로수들과 다르다. 한마디로 말해 별 볼품이 없다. 나무 둘레는 기껏해야 두 뼘 남짓 하고,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생채기들도 눈에 띈다. 가지들도 무성하지 않아 아직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아직 가로수라 이르기엔 많이 모자라지만, 거센 강바람과 싸우며 조금씩 가지를 뻗어가고 있는 모습에서 씩씩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나무들은 모두 '나무 고아원' 출신이다. '나무 고아원'은 2001년 6월 미사동에 7만㎡ 규모로 조성된 '하남 수목원'의 다른 이름. 개발 등으로 경기도 내 곳곳에서 뽑히고 버려진 나무들을 옮겨 심는 일종의 폐목 집합소다. 하남시는 이곳에서 정성껏 나무들을 길러낸 뒤 가로수 조성 사업이나 공원 조경수 등에 재사용하고 있다.

폐목 신세를 거친 나무들이다 보니 저마다 간직한 사연들도 구구절절하다.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는 주민 민원 때문에 나고 자란 터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도 있고, 주택 신축 현장에서 중장비에 의해 잘려나갈 위기에 처한 것을 시 직원이 발견해 고아원으로 옮긴 것도 있다. 가깝게는 하남시 덕풍동 도로 공사 현장에서, 멀게는 파주 광탄면 초등학교 건립 현장에서 온 나무들도 있다.

수목원의 김종일 관리원은 "나무 고아원에 오는 대부분의 나무는 거칠게 다뤄진 탓에 껍질이 벗겨져 있거나 병이 든 상태로 도착한다"면서 "미사리 산책로에 옮겨 심은 나무들도 2002년 고아원에 왔을 당시 잔가지는 모두 잘려나간 채 전봇대처럼 줄기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개발'의 상처를 안은 나무들은 나무 고아원에서 세심한 치유 과정을 거쳤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들은 한약재 찌꺼기와 톱밥, 유기질 비료를 공급 받았다. 또 병해충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각종 영양제와 약제도 섭취했다. 때로는 체험교육을 위해 이곳을 찾은 학생들을, 때로는 고아원 하늘 길을 지나는 청둥오리와 기러기 등 철새들을 벗 삼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3년여의 집중 배양 기간을 거친 나무들은 2007년 부터 차례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 2007년 750그루, 2008년 130그루, 올 4월 79그루 등 모두 959그루가 한강 산책로로 옮겨져 '제2의 나무 인생'을 시작했다. 김종일씨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 나무라 그런지 다른 가로수들에 비해 생명력이 더욱 질긴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나무들이 모두 다시 만난 세상에 잘 적응한 것은 아니다. 산책로는 사방이 트인 곳이라 강바람이 거센데다, 바닥도 배양토가 아닌 모래 위주 흙이어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40여 그루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죽어 버리거나 다시 나무 고아원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2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이제는 959 그루 모두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활착에 성공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어두웠던 과거를 훌훌 털고 이제는 시민들에게 상쾌한 공기를 공급하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많은 비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한강 둔치를 만들어 주며 나무 고아원에서 받은 정성과 사랑에 보답하고 있다. 8월에는 수도권대기환경청에서 선정한 '수도권 조깅ㆍ산책 코스 베스트 20'에서 이곳 '미사리 산책로'가 당당히 6위(93.25점)를 차지했다.

산책로 느티나무들 덕에 나무 고아원생들 보는 눈도 달라졌다. 값싼 이식 비용과 질긴 생명력 때문에 곳곳에서 이들을 찾고 있는 것. 실제로 미사리 산책로 조성에 새 나무를 구입했다면 2억원 이상이 필요했겠지만 나무 고아원생들을 활용해 이식비와 인건비 9,000만원 정도만 투자하고도 훌륭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하남 문화예술회관이나 공원, 산책로 등 공공 시설은 물론, 아파트 조경 사업자들도 나무 고아원생들을 원하고 있다.

하남시 관계자는 "아직도 각종 공사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버려지거나 개인 땅에서 관리 소홀로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아 안타깝다"면서 "홀대 받던 나무들도 조금만 관리를 하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말했다.

현재 소나무와 느티나무, 홍단풍, 메타세콰이어 등 39종 1만2,858그루가 자라고 있는 나무 고아원은 초중고교생들의 나무사랑 체험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문의 (031)790-5055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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