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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성희롱, 성폭력 불감증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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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성희롱, 성폭력 불감증 사회

입력
2009.10.0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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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불감증이자 총체적 난국이다. 이 사회의 성희롱이나 성폭력 민감도 지수는. 꿀벅지, S라인, 황금골반, 뒤태 미인, 초콜렛 복근 등의 용어가 난무하고, 인터넷에는 꿀벅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이 줄을 잇고, 꿀벅지를 만들어 주겠다는 다이어트 센터도 우후죽순으로 들어선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창력이나 연기보다 그 배우가 가진 성적 매력이 더 부각이 되고, 그 성적 매력조차 극단적인 파편화된 부위별 명칭으로 통용이 된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벼슬도 찬란한 닭 한 마리 두고, 이름 대신 저 닭은 날개가 꿀날개네, 다리가 황금 다리네…이렇게 말하면 듣는 닭이 기분 나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 연예인들이 이런 식의 성적 뉘앙스가 풍기는 지칭을 당당하게 거절한다면, 더 멋있어 보일 텐데. 해당 연예인, 오히려 나쁘지 않다. 괜찮다는 식이다.

성폭력이나 성접대의 경우는 성희롱보다 훨씬 무거운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대체 장자연 자살 사건의 주범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게다가 아이를 불구로 만드는 끔찍한 아동 성폭력범도 12년이면 죄값을 치를 수 있다.

인구에 회자되지만, 대책이 없고, 대책이 있다 해도 실효성이 없다. 대통령이 탄핵 당할 때는 거리거리마다 촛불이고, 축구가 월드컵 4강을 올라가면 광장 가득 사람들이 들어차지만. 가엾게 죽어간 한 여배우를 위해, 어린 나영이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촛불을 함께 들자고 한다면, 당신은 당장 광화문으로 뛰어 나올 수 있는가?

이 모든 사건에서 사람들이 잊어 버리는 것이 있다. 그것이 성희롱이든 성폭력이든 '성'이 문제가 아니라 '폭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꿀벅지가 성희롱이네 아니네 하는 논란보다도 더 중요한 것. 그리고 해당 연예인이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 아닌 것. 전체 여성들이 생선 토막이나 고깃덩이처럼 이러한 파편화된 부위별 명칭으로 잣대질될 때, 그것은 엄연한 언어 폭력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아이의 인생을 짓밟고 꿈을 짓밟고 지독한 악몽과 상처에 떨게 할 아동 성폭력범 사건이 한 두 사건이 아닌데도, 그 죗값이 떨어지는 논리 뒤에는 성에만 방점을 찍고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드리워져 있다.

매년 성폭력을 당하는 13세 미만의 아동이 한 해 2만 5,000건, 그 중 10%가 남자 아이. 아동 성폭력범의 60%가 면식범, 그 중 이웃의 아저씨가 15%. 아동 성폭력범의 징역형은 19%, 81%가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남. 성폭력 범죄자 재범률 52.8%, 성폭력 범죄자 10명 중 3명은 동일 전과 상습범. 이것이 우리가 그거 성적인 범죄로 생각하는 성폭력의 실태이다. 아니 이 지독한 폭력의 실상이기도 하다.

꿀벅지 논란을 벌인다고 이 은밀한 집단적 관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두순 사건 범인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된다 해서,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단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자의식을 갖는 것.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고 허술한 시스템의 그물망을 손질하는 것. 무엇보다도 성과 연관된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권력의 문제이자 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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