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는 수억년 동안 한번도 녹지 않은 얼음평원이 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그 얼음이 지금은 쉴새없이 녹아 내리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자연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사라지는 빙하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먹을 게 줄었다. 탐사팀 베이스캠프 주위를 떠날 줄 모르는 북극곰은 몇 달을 굶었는지 울부짖기만 했다. 그래서 먹이를 찾아 정처 없이 길을 나선 어미와 새끼 곰들의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마냥 웃으며 볼 수는 없었다.
바다표범, 일각고래 등 북국 동물의 개체가 줄어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이누이트들의 사냥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나갔던 얼음평원은 어느새 바다로 변해 있었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안성기는 이렇게 말한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 북극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온난화가 '얼음 없는 북극'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4부작 '북극의 눈물'이 81분 분량으로 재편집돼 15일 영화 관객을 찾아간다. 평균 시청률 12.3%(TNS미디어 조사), 제36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6개국 판매 등 숱한 화제를 낳으며 '명품 다큐'로 평가받은 그 작품이다. 개봉을 앞두고 '북극의 눈물'의 두 연출자 허태정, 조준묵 감독을 만나 치열했던 300일 간의 촬영기를 들어봤다.
북극 촬영은 날씨와 동물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수 가득한 작업이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엄청난 비용 및 시간이 요구돼 제작자들은 '롱 텀, 빅 버짓'(long term, big budget) 작업이라고 말한다. "찍고 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북극 곰이 대개 3월에 나오는데 안 나오면 외국 방송사들도 그 다음해 다시 찾더라고요."(허태정)
"기다림이 제일 힘들었어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현지인의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니까. 일주일 동안 한 컷도 못 찍었을 땐 '나 망했나 봐. 그냥 확 죽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조준묵) 그렇게 답답해하던 조 감독은 어느날 새벽 현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촬영한 고래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촬영 욕심에 위험한 상황도 여러 번 맞았다. "얼음이 녹아 갈라진 크랙에 여자 조연출이 두 번이나 빠졌어요. 북극 곰에게 10m까지 접근했는데 녀석이 혹시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까 무서웠습니다."(허태정)
현지에서 느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한 마을에서 썰매 개들을 모두 죽였어요. 얼음 어는 기간이 짧아져 개를 끌고 사냥을 나갈 수도, 먹이를 줄 여유도 없어진 거죠. 얼음 빙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처음 찍을 때는 '하나 건졌구나' 싶었는데 끝없이 무너지니깐 촬영팀 모두 할 말을 잃었어요."(조준묵)
'북극의 눈물'은 TV 방영에 이어 DVD 및 도서 발매 그리고 영화까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스' 사례로 언급할 수 있는 최초의 TV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KBS '차마고도' 등 일부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국내 다큐 제작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허 감독은 "좋은 작품이 나오고 있지만 제작환경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조 감독은 "다큐 기획안을 보고 '끝내주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투자 확대를 유도하려면 모든 다큐가 다 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방송대상 수상작인 KBS '누들로드'의 제1부 '기묘한 음식'이 최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상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았고, 제4부 '아시아의 부엌을 잇다'가 '2009 재팬 프라이즈' 본선에 진출했다는 등의 소식이 이들에게 특별히 반가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조 감독은 "'북극의 눈물'을 계기로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북극의 눈물'은 TV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보강하고, 방송되지 않은 미공개 영상도 많이 담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음악을 담당한 심현정 음악감독도 힘을 보탰다. "북극의 아름다운 4계를 함축적으로 편집해 기존 TV판과 다른 감동을 전하려 했어요. 많은 분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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