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1676~1759) 연구의 권위자인 최완수(67)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이 40여년 겸재 연구를 결산한 책 <겸재 정선> (현암사 발행ㆍ전3권)을 냈다. 200자 원고지 3,673장에 이르는 본문 내용에 도판 206장, 참고그림 147장이라는 엄청난 분량이다. 겸재>
그간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1993) <진경시대> (1998) <겸재의 한양진경> (2004) 등 최 실장이 쓴 겸재 연구서가 여럿 있지만, 이번 책은 가히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겸재의 평생 행적을 편년체로 써내려간 책은 겸재의 그림 자체에 대한 세세한 해설은 물론, 그림의 바탕이 된 겸재의 가정 형편과 교우관계, 학맥 연원,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을 함께 짚어 겸재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진경산수화라는 고유의 회화 양식을 창안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긴 화가 겸재 정선의 수많은 걸작들을 또렷하게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겸재의> 진경시대> 겸재>
6일 책을 받아든 최 실장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겸재의 작업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관련 연구서도 주제별로 제각각 나뉘어져 있어 일목요연하게 보기 어려웠어요. 이제 이 책 하나면 겸재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이번 일이 가능했던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겸재 그림이 조선 후기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해줄 결정적 유산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집중적으로 수집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실장이 "숙명이었다"고 표현하는 겸재와의 만남은 겸재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간송미술관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던 그는 1966년 당시 박물관 미술과장이던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1971년 '겸재'전으로 간송미술관의 첫 정기 전시를 시작한 이래 7번의 겸재 전시를 개최하며 관련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해왔다. 겸재 서거 250주년인 올해 봄에도 '겸재화파'전을 열어 겸재 바람을 일으켰다.
왜 하필 겸재였을까. 그는 "조선 문화가 형편없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려면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우리 사학계에도 조선 왕조를 문화적 정체기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많았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진경시대를 집중 조명해 그 가치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 250년은 중국을 닮기 위한 발버둥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발전시켜 조선성리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우리화된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그를 토대로 진경 시문학과 진경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겸재는 국토의 아름다움과 민족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긍을 고차원적인 회화미로 표출해낸,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지식인이지요."
그는 겸재 연구에 바친 긴 세월을 그저 "영광스럽고 행복했다"는 짧은 말로 요약했다.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적은 없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밖에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제 기초 작업은 해놓았으니 앞으로 겸재뿐 아니라 진경시대 전체에 대한 후배들의 연구가 많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이제 추사 연구에 집중하려 합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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