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만 먹어라."
금융당국이 이번 금융위기를 맞아 잇따르고 있는 이른바 '인수ㆍ합병(M&A) 승자의 저주' 재발 방지에 팔을 걷고 나섰다. 금융기관을 통해 무리한 M&A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인데, 최근 시장에 나온 대형 매물 매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7일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공동으로 대우건설 재매각 사태의 문제점을 케이스 스터디한 결과, 무리한 인수조건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앞으로 본격화될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감독과 채권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승자의 저주, 왜?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공격적 M&A는 기업 성장의 지름길로 통했다. 기업들은 이를 위해 과감한 차입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ㆍ차입 인수)'이 유행처럼 번졌고, 급기야 투자만 해주면 나중에 고가로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식의 각종 옵션까지 난무했다.
금호아시아나의 발목을 잡은 대우건설 '풋백(주식 등 자산을 되팔 수 있는 권리) 옵션'이 대표적 예다. 두산의 경우는 국내 7개 은행에서 29억달러를 조달하면서 밥캣의 모회사인 DII의 에비타(EBITDAㆍ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 유지조건을 약정해 발목을 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불발된 대우조선해양 매각 때도 사모펀드, 은행, 연기금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보다는 당장 원리금 보장 이상의 옵션을 요구한 것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승자를 한 순간에 패자로 만들었다. 잔뜩 짊어진 부채와 각종 옵션이 오히려 그룹 전체의 생사까지 위협하기에 이르자 기업들이 눈물을 머금고 알짜 자산까지 내놓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막을까
금융당국은 앞으로 매각대상 기업의 지분을 가졌거나 향후 M&A에 투자금을 대는 금융기관을 통해 승자의 저주 차단에 나설 방침이다. 인수기업 부실화가 곧 주채권은행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쳐 전체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1차 타깃은 대우인터내셔널, 하이닉스, 우리금융지주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매각. 채권은행에 당국의 영향력이 큰 만큼, 인수 후보를 평가할 때 인수자금 조달구조와 인수 후 감당능력까지 면밀히 살피게 할 계획이다. 과도한 풋백옵션 등 조건은 아예 어렵게 됐다.
대우인터 매각에 나선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인수자가 향후 경영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자인지, 자금조달 방법이 어떤지 등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채권단 고위 관계자도 "인수 의사를 밝힌 효성의 자금조달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매각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직접 간여하기 어려운 사기업 간의 M&A에도 은행을 통해 최대한 무리수를 막을 계획이다. 은행이 매각주관사를 맡거나 자금을 투자할 경우, 과도한 조건을 걸거나 부실한 기업에 대출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 민유성 행장도 "매각 가격과 함께 인수자의 자금 조달 능력, 전략적 투자자가 어떤지를 주로 따져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승자의 저주란
과도한 가격과 조건으로 기업을 인수했다가 차입금 상환이나 운영상 부담으로 인수 기업이 부실 위험에 빠지는 것. 1950년대 미국 멕시코만 석유시추권 경매시장에서 치열한 입찰경쟁 끝에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낙찰 받은 석유회사가 경쟁에서 이기고도 손해를 본 사례에서 유래됐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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