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수사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검찰이 효성그룹과 관련된 범죄 첩보를 광범위하게 입수한 뒤 범죄혐의가 있다는 분석 보고서까지 작성하고도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검찰이 효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멀게는 3년, 가깝게는 1년 반 전이다. 검찰은 2006년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효성과 관련된 석연치 않은 자금 흐름 내역을 입수했고 2008년 초에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효성 비자금 조성 제보 내용을 넘겨받았다.
효성이 2000년께 일본 현지법인을 통해 발전설비 단가를 부풀려 수입하는 수법으로 200억~3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권익위 제보를 근거로 수사는 본격화했다.
그러나 검찰은 속전속결이 원칙인 대기업 수사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긴 시간을 소비했다. 성과도 없었다. 권익위 제보 내용은 효성중공업의 일부 임원이 수입 단가를 200억~300억원 부풀려 한국전력에 사기 납품했다는 요지의 개인 비리 사안으로 정리됐다.
이후 검찰의 수사 초점은 효성그룹의 한 계열인 효성 건설부문에만 맞춰졌고 확인된 비자금은 건설부문이 국내에서 조성한 70여억원이 전부였다. 그룹이나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해외 법인을 통한 재산 해외유출 등 의혹 등은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특별수사부서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부장검사 4명이 교체되는 긴 기간 동안 벌인 수사의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부실했다.
검찰의 효성관련 범죄첩보 보고서 내용은 검찰이 충분한 수사단서를 확보하고도 적극 수사에 나서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효성 건설부문만 압수수색했을 뿐 그룹은 손도 대지 않았다.
수사 관계자는 "그룹이나 오너 쪽으로 비자금이 유입된 정황은 없다. 수사는 건설부문에 한정된다"고 선을 긋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만일 그 배경에 외압이나 '눈치보기'가 작용했다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검찰은 DJ정부 시절에도 외압에 의해 각종 사건들을 덮었다가 나중에 각종 '게이트'로 비화한 적이 있다.
검찰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했고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가 발생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목소리를 감안하면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한층 커질 수 있다. 다른 대기업 수사와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또한 검찰이 구체적인 범죄혐의 보고서를 근거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은밀한 수사를 하고도 이처럼 빈약한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면 검찰의 무능을 드러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효성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DJ정부 때 검찰은 수사를 은폐하고 은폐사실을 또 다시 덮으려다가 큰 화를 입었다"며 "검찰이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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