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다룬 영화는 어둡고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8일 개봉하는 김아론 감독의 '헬로우 마이 러브'는 밝고 경쾌하다. 심각한 상황이나 메시지 대신 발랄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중 호정(조안)은 10년 사귄 남자친구 원재(민석)가 동성 애인 동화(류상욱)와 함께 유학에서 돌아오자 충격에 빠진다. 사랑을 되찾으려는 호정과 원재-동화 커플은 사랑과 질투, 우정을 오가는 혼란스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한국의 동성애 영화가 밝아졌다. 8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0분 분량으로 쇼케이스 상영을 할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 사이?'도 20대 청년들의 동성애를 발랄하고 즐겁게 그리는 작품이다. 동성애자인 그는 그동안 한국의 동성애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친구 사이?'는 50~60분 길이로 12월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그가 지난해 감독 데뷔작으로 선보인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 는 10대 소년들의 동성애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그렸다. 지난해 개봉한 민규동 감독의 '서양골동양과점 앤티크'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즐기는 게이를 등장시켜 유쾌한 드라마를 펼쳤다.
한국 영화에서 동성애는 이제 낯설지 않다.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와 CF에도 자주 등장하는 코드가 됐다. 지난해 한 이동통신사 광고는 "완벽한 남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카피로 동성애를 암시했고, 최근 끝난 TV 드라마 '스타일'은 게이 사진작가를 비중 있는 조연으로 설정해 동성애자를 이해하려는 우호적 시선을 보여줬다.
남장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2008)과 '커피 프린스 1호점' (2007)도 동성애 코드를 넣어 큰 인기를 모았다.
동성애가 대중문화의 주요 코드로 자리잡고 더 나아가 밝게 그려지게 된 배경을, 영화평론가 박진형씨는 "동성애자를 더 이상 괴물로 보지 않을 만큼 대중의 인식이 바뀐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만화, CF,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한 간접경험이 늘면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고 그 영향으로 동성애 영화도 밝고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동성애자를 코믹하게 과장하거나 죄악시하던 데서 벗어나 최근에는 좀더 현실적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성숙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김조광수 감독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해 '소년, 소년을 만나다'를 발표했을 때 동성애를 너무 밝게 그린 게 아니냐, 현실과 다르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그렇지 않다. 여전히 힘든 점은 있지만, 현실이 바뀌었기 때문에 영화도 바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는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면 다들 큰 일 났다고 했지만, 요즘은 친구들이 축하해준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야오이'(やおい, 남성 동성애물) 문화를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이 늘고, 10대 청소년들이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간의 동성애 이야기를 지어내는 '팬픽'에 열광하는 현상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물론 동성애자나 동성애 영화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김조광수 감독은 "투자자나 배우들은 아직도 동성애 영화를 꺼리는 편이어서 투자 받기와 캐스팅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헬로우 마이 러브'도 3억 7,000만원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임을 상기시키면서 "관객들의 자세나 CF, 드라마의 유연성에 비해 영화산업은 동성애에 대해 더 보수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최근 동성애 코드의 활용이 많아졌지만, 진짜 동성애 영화는 별로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더 많은 동성애 영화가 만들어져야 우리 사회의 균형과 다양성, 관용이 더 성숙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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