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9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며 큰 관심을 모았던 조정래(66)씨의 대하소설 <한강> .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태백산맥> 의 후속작 격이라 연재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지만 하마터면 이 소설은 빛을 못 볼 뻔했다. 집필을 위해 만주 취재가 필요했지만 <태백산맥> 완간 후 계속된 작가에 대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흠집내기에 편승, 당시 막 출범한 문화부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의 출국을 불허했다. 태백산맥> 태백산맥> 한강>
문화부 담당 국장의 책상을 발로 걷어차고 나온 뒤 집필을 포기할까 할 정도로 번뇌하던 조씨.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조씨가 '문단 선배'이자 '큰어른'으로 표현한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의 전화였다. 장관실로 불려 들어간 조씨는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던 그의 표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올거지?' '아무 말썽없이 다녀올거지?' '아무 사고 내지 않을거지?' 이 선생의 눈말은 이런 것이었다."
조씨가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시사인북 발행)에서 털어놓은 일화다. <누구나 홀로선 나무> (2002) 이후 그의 두번째 에세이집인데, 글은 '작가 조정래'에 대한 젊은 독자들의 질문에 그가 답하는 형식이다. 500개의 질문 가운데 84가지를 추렸는데 그가 지난 여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작성한 응답은 자신과 작품에 얽힌 숨겨진 비화들은 물론, 40년간 소설가의 길을 걸어온 그의 문학관, 인생관, 작품관의 핵심을 오롯이 포괄하고 있다. 누구나> 황홀한>
'문학과 민족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소설은 꼭 진실을 써야 하는가' '예술에서 재능과 노력은 몇 대 몇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은 거창한 혹은 예술론적 질문부터 '조정래 문학인생에서 아내 김초혜는?' '<태백산맥> 에 야한 장면이 과할 정도로 많은 이유는' 등의 개인적인, 짓궂은 질문까지 그는 성실하게 응대한다. 태백산맥>
조씨는 6일 책 출간을 기념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족들에게 사적으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다 썼다. 자식들에게는 유언이 될 수도 있다"며 "미래의 주역들, 젊은이들의 삶에 길벗이 된다면 이 책은 제 소임을 거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