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남(72) 할머니는 세 살 때였던 1940년 부모님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떠났다가 67년만인 2007년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한국에서 보내고 뼈도 묻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실이 입증되면 국적을 회복시켜준다는 얘기에 부푼 마음으로 밟았던 한국 땅이다. 하지만 국적 회복을 신청한 지 이번 달로 꼭 2년이 됐지만 아직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차례 찾아간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국적이 없다 보니 기초생활수급비나 의료보험 혜택은 언감생심이다. 다리마저 불편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처지다. 서울 구로구 한중사랑교회에서 마련해준 10여평 규모의 방에서 같은 처지의 중국동포 10여명과 지내고 있는 이씨는 "국적을 회복시켜줄 마음이 있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될 것 같은데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국적 회복을 신청한 고령의 재중동포들이 몇 년을 끄는 긴 심사 기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고향에 뼈를 묻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국한 어려운 형편의 독거 노인들이어서 정부의 배려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04년부터 60세 이상 고령 동포에 대해 국내 호적이 확인되면 한국 국적을 회복시켜 주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재중동포 국적회복 신청자는 2004~2006년 1만명 가량이 한꺼번에 몰린 뒤 2007년 1,081명, 2008년 476명, 2009년 9월 현재 346명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심사기간이 1~2년씩 걸려 올해 국적을 실제 회복한 이들의 경우 2007년 신청했던 이들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 동포의 경우 심사기간은 평균 5~6개월로, 이들에 비해서도 두세 배 이상 길다.
심사기간이 이처럼 긴 것은 무엇보다 담당 직원이 10여명에 불과해 업무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중동포들은 신청자가 많은 데다, 서류 위ㆍ변조를 의심해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도 큰 이유다.
동포 문제를 주로 맡아온 서기원 변호사는 "정부가 예상한 수요보다 훨씬 많은 신청자가 몰려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며 정부의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이들 재중동포 신청자들은 긴 심사기간 동안 국적이 없다 보니 의료보험이나 기초생활수급비 등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동포교회의 김해성(48) 목사는 "신청자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고령이어서 국적회복을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종종 본다"며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재중동포에게 긴 심사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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